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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것이 대답도 아닌거 남겨둔 바라봤다. 묻는[윤한샘 기자]
▲ <시티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 스틸컷
ⓒ ㈜팬 엔터테인먼트
카카오톡도 유튜브도 없던 90년대, 조용한 질풍노도시기를 보내던 나의 유일한 낙은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서 사이다쿨 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었다. 테이프 앞뒷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듣다 조금씩 질릴 즈음, 손에는 조용히 만화책이 들려 있곤 했다.
<드래곤 볼>, <닥터 슬럼프>, <공작왕>, <북두신권>, <슬램덩크>, <시티헌터>... 몇 번만 넘겨도 빛이 바래던 종이 위 흐릿한 명암으로 인쇄된 만화책은 누가 봐도 해적판이었다. 어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설프게 번역된 한국 이름은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십 대 아이들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만화책은 금지된 일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권선징악의 틀에 갇혀있던 한국 만화와 달리 자극적인 주제와 선정적인 표현은 사춘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입시에 갇혀 아등거리던 나에게는 일탈과 웃음 바다이야기릴게임2 을 안겨주는 카타르시스 도구이기도 했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시절 우리는 만화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까지 일본의 것을 따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 문화는 시기와 질투, 동경과 열등감이 뒤엉켜 있던 불편한 거울이었다.
이 시기 십대였던 나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일본 쿨사이다릴게임 음악과 영화에 익숙하지만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 노재팬 시절 일본 맥주 불매에 동참했지만, 슬램덩크가 개봉했을 때는 아들 손을 잡고 보러 가는 이런 이중성은 한국 문화가 일본을 넘어선 지금도 불편한 앙금으로 남아있다.
도쿄의 판타지 구현한 <시티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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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티헌터> 한글 완전판 1권. 주인공 사에바 료
ⓒ 학산문화사
나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본 작품은 <시티헌터>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시티헌터>는 돌려 볼 대로 돌려봐서 너덜너덜해진,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만화책이었다.
훤칠한 키에 단단한 근육, 짙은 눈썹과 멋진 눈매를 가진 주인공의 첫 한국 이름은 '방의표'. 허나 방의표가 촌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던 탓인지, 해적판 속 이름은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우수한'으로 정착했다. 여전히 이 이름은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사에바 료'다. 그는 도쿄 신주쿠를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보수를 받는 해결사다. 그런데 이 남자, 단순한 뒷골목 깡패가 아니다. 최고의 청부업자로 선수들의 세계에서는 전설로 통한다. 상대방의 총알을 피하며 357 매그넘 콜드파이선 단 한 발로 헬리콥터를 격추시키는 사에바 료의 모습은 적들에게 선망과 공포의 대상이다. 그를 부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신주쿠역 전언판에 'XYZ' 남기는 것. 단, 남자는 제외다. 오직 예쁜 여성만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모든 게 완벽한 사에바 료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심각한 호색한이라는 것. 다행히 사망한 파트너 마키무라의 여동생이자 현재 조수 카오리가 곁에 있어 료가 발작할 때마다 거대한 망치로 그의 음탕함을 부숴버린다.
사에바 료는 본래 <캣츠 아이>라는 작품에 잠시 등장한 카메오였다. 시티 헌터의 원작자 호조 츠카사는 1981년 세 자매 미녀 괴도를 다룬 <캣츠 아이>를 소년 점프에 연재했을 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에바 료를 잠시 출연시켰다. 대히트를 친 <캣츠 아이>의 후속을 고민하던 호조 츠카사는 1985년 사에바 료를 주인공으로 한 <시티헌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을 내뿜는 도쿄의 빌딩들, 신주쿠를 움직이는 유흥가와 그 속을 살고 있는 밑바닥 인생들, 그리고 법의 관할을 벗어나 도쿄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하는 완벽한 남자와 동료들의 활약상이 <시티헌터>의 주요 스토리다.
짙은 쌍꺼풀, 푸른 눈동자, 9등신의 몸, 시티 헌터 속 인물들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일본인과 동떨어져 있다. 이런 설정은 '탈아입구', 80년대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 되고자 했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상 중 하나다.
이런 흔적은 1987년부터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에서 절정에 이른다. 화면 속 도쿄는 더 이상 아시아의 도시가 아니다. 뉴욕이나 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수도로 그려진다.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고, <시티헌터>의 인물들은 어설픈 영어를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그 장면들 속에는 당시 일본 사회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에 두고 바라보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네온으로 반짝이는 도쿄의 불야성, 와인과 위스키로 밤을 지내는 사람들, 이를 배경으로 흐르는 낭만적인 시티 팝, 호조 츠카사는 시티 헌터를 통해 버블 시대의 도쿄를 하나의 완벽한 판타지로 박제했다.
20년 만에 돌아온 시티헌터
▲ 한국에서 드라마로 각색된 SBS <시티헌터>. 올드팬이 보기엔 멜로물이었다.
ⓒ SBS
2000년대 초반 도쿄를 처음 갔을 때 아직 남아있는 버블의 잔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여행과 출장으로 찾은 도쿄는 마치 15년째 잠에 빠진 내 책장 속 <시티헌터>처럼 조금씩 그 빛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2017년, 일본 크래프트 신을 체험하고자 떠난 도쿄 출장에서 <시티헌터>와 뜻밖의 재회를 했다. 힙하다는 펍을 찾아 쏘다니던 골목 어귀, 2019년 <시티헌터>의 귀환을 알리는 포스터가 나를 멈춰 세웠다. 사에바 료가 20년 만에 극장으로 돌아온다는 홍보 포스터였다.
<시티헌터>가 돌아온다고? 혹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는 귀국 후 일상을 사느라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2년 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잊고 있던 도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시티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 이 철 지난 작품을 한국 영화관에서도 볼 수 있다니, 나 같은 올드팬들이 꽤 있구나. 그럼에도 극장으로는 영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본 만화를 몰래 보던 십대의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은 심정이 여전히 남아있던 것일까. 결국 선택한 방법은 OTT(유튜브 영화)를 통한 시청. 마침내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스마트 폰을 통해서 사에바 료와 카오리를 만날 수 있었다.
20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은 <시티헌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세계관은 물론 시대를 풍미하던 OST, <시티헌터>만의 지극한 클리셰까지, 올드팬의 감성을 건드리는 장치가 곳곳에 놓여있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예전 에피소드를 오마주한 짧은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맥주는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에바 료와 카오리가 들고 있던 맥주는 한눈에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노란색 바탕의 파란색 글자,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였다.
사에바 료의 맥주,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캔
ⓒ 윤한샘
산토리는 맥주 업계의 후발 주자였다. 1899년 토리이 신지로의 상점에서 출발해 위스키와 와인으로 기반을 다진 뒤, 1963년에야 맥주 시장에 진입했다. 1960년대 올림픽을 치른 일본은 급격한 경제성장 한가운데 있었다. 맥주의 대중화를 읽은 산토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기린이 지배하던 시장에서 산토리 맥주는 오랜 기간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03년 출시한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는 산토리가 후발 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었다. 가격 경쟁을 벗어나 가치와 풍미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은 일본 맥주에 '프리미엄'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정착시켰다.
20년 만에 귀환한 <시티헌터>에 왜 산토리 맥주가 등장했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두 존재가 공유하는 무대가 바로 도쿄이기 때문이다. 1963년, 산토리의 첫 맥주는 도쿄도 후추시 무사시노 양조장에서 태어났다.
▲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예쁜 전용잔으로 유명하다
ⓒ 윤한샘
산토리 위스키가 오사카의 술이라면, 산토리 맥주는 도쿄의 술이다. 그래서 신주쿠 해결사 사에바 료의 손에 도쿄 맥주 산토리가 들려 있는 장면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마치 PPL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한국 드라마처럼, <시티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를 숨기지 않는다. 컬래보래이션인지 단순한 PPL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장면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한동안 맥주를 고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로 손이 향하게 만들었다.
이왕이면 사에바 료가 마시던 맥주를 마셔야지. MZ든 중년이든 어쩔 수 없다. 사람은 기억과 추억을 먹고 산다. 빛바랜 종이 속 흐릿한 사에바 료는 90년대 버블을 반짝이는 TV 애니메이션을 거쳐 이젠 선명한 황금색 맥주를 상징하는 인물로 되살아났다.
나에게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는 <시티헌터>의 도상이다.
치유의 시간
▲ 재작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실사판 <시티헌터>.
ⓒ 넷플릭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티헌터>는 어떻게 다가올까? <시티헌터>를 보고 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억압과 금기의 시대에 십대였던 나에게 <시티헌터>는 모험과 낭만이 넘치는 세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한 불편함이 앞선다.
재작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실사판 <시티헌터>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유치한 연출력과 부족한 연기력을 차치하고라도 시대를 읽지 못한 성의식과 세계관에 한숨만 나왔다.
여성을 상품화하고 범죄와 다름없는 성희롱을 서슴지 않고 일삼는 사에바 료의 행동과 철 지난 탈아입구가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짜증을 유발했다. 아마 내가 올드팬이 아니었다면 저질 B급 영화로 취급하고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을 게다.
문화의 성숙은 의식의 성숙을 낳는다. 사실 지난 10년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는 내 속에 잔재하고 있던 일본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사라지게 했다. 시기와 질투도, 동경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해적판 만화의 오래된 종이 속 서양인을 닮은 일본 영웅을 훔쳐보던 소년은 이제는 누군가를 닮으려 애쓰지 않는다.
신주쿠역의 XYZ는 추억의 한 페이지일 뿐, 성숙한 어른에게 더 이상 영웅은 필요치 않다. 안녕, <시티헌터>
덧붙이는 글
▲ <시티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 스틸컷
ⓒ ㈜팬 엔터테인먼트
카카오톡도 유튜브도 없던 90년대, 조용한 질풍노도시기를 보내던 나의 유일한 낙은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서 사이다쿨 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었다. 테이프 앞뒷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듣다 조금씩 질릴 즈음, 손에는 조용히 만화책이 들려 있곤 했다.
<드래곤 볼>, <닥터 슬럼프>, <공작왕>, <북두신권>, <슬램덩크>, <시티헌터>... 몇 번만 넘겨도 빛이 바래던 종이 위 흐릿한 명암으로 인쇄된 만화책은 누가 봐도 해적판이었다. 어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설프게 번역된 한국 이름은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십 대 아이들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만화책은 금지된 일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권선징악의 틀에 갇혀있던 한국 만화와 달리 자극적인 주제와 선정적인 표현은 사춘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입시에 갇혀 아등거리던 나에게는 일탈과 웃음 바다이야기릴게임2 을 안겨주는 카타르시스 도구이기도 했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시절 우리는 만화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까지 일본의 것을 따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 문화는 시기와 질투, 동경과 열등감이 뒤엉켜 있던 불편한 거울이었다.
이 시기 십대였던 나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일본 쿨사이다릴게임 음악과 영화에 익숙하지만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 노재팬 시절 일본 맥주 불매에 동참했지만, 슬램덩크가 개봉했을 때는 아들 손을 잡고 보러 가는 이런 이중성은 한국 문화가 일본을 넘어선 지금도 불편한 앙금으로 남아있다.
도쿄의 판타지 구현한 <시티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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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티헌터> 한글 완전판 1권. 주인공 사에바 료
ⓒ 학산문화사
나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본 작품은 <시티헌터>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시티헌터>는 돌려 볼 대로 돌려봐서 너덜너덜해진,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만화책이었다.
훤칠한 키에 단단한 근육, 짙은 눈썹과 멋진 눈매를 가진 주인공의 첫 한국 이름은 '방의표'. 허나 방의표가 촌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던 탓인지, 해적판 속 이름은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우수한'으로 정착했다. 여전히 이 이름은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사에바 료'다. 그는 도쿄 신주쿠를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보수를 받는 해결사다. 그런데 이 남자, 단순한 뒷골목 깡패가 아니다. 최고의 청부업자로 선수들의 세계에서는 전설로 통한다. 상대방의 총알을 피하며 357 매그넘 콜드파이선 단 한 발로 헬리콥터를 격추시키는 사에바 료의 모습은 적들에게 선망과 공포의 대상이다. 그를 부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신주쿠역 전언판에 'XYZ' 남기는 것. 단, 남자는 제외다. 오직 예쁜 여성만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모든 게 완벽한 사에바 료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심각한 호색한이라는 것. 다행히 사망한 파트너 마키무라의 여동생이자 현재 조수 카오리가 곁에 있어 료가 발작할 때마다 거대한 망치로 그의 음탕함을 부숴버린다.
사에바 료는 본래 <캣츠 아이>라는 작품에 잠시 등장한 카메오였다. 시티 헌터의 원작자 호조 츠카사는 1981년 세 자매 미녀 괴도를 다룬 <캣츠 아이>를 소년 점프에 연재했을 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에바 료를 잠시 출연시켰다. 대히트를 친 <캣츠 아이>의 후속을 고민하던 호조 츠카사는 1985년 사에바 료를 주인공으로 한 <시티헌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을 내뿜는 도쿄의 빌딩들, 신주쿠를 움직이는 유흥가와 그 속을 살고 있는 밑바닥 인생들, 그리고 법의 관할을 벗어나 도쿄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하는 완벽한 남자와 동료들의 활약상이 <시티헌터>의 주요 스토리다.
짙은 쌍꺼풀, 푸른 눈동자, 9등신의 몸, 시티 헌터 속 인물들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일본인과 동떨어져 있다. 이런 설정은 '탈아입구', 80년대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 되고자 했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상 중 하나다.
이런 흔적은 1987년부터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에서 절정에 이른다. 화면 속 도쿄는 더 이상 아시아의 도시가 아니다. 뉴욕이나 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수도로 그려진다.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고, <시티헌터>의 인물들은 어설픈 영어를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그 장면들 속에는 당시 일본 사회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에 두고 바라보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네온으로 반짝이는 도쿄의 불야성, 와인과 위스키로 밤을 지내는 사람들, 이를 배경으로 흐르는 낭만적인 시티 팝, 호조 츠카사는 시티 헌터를 통해 버블 시대의 도쿄를 하나의 완벽한 판타지로 박제했다.
20년 만에 돌아온 시티헌터
▲ 한국에서 드라마로 각색된 SBS <시티헌터>. 올드팬이 보기엔 멜로물이었다.
ⓒ SBS
2000년대 초반 도쿄를 처음 갔을 때 아직 남아있는 버블의 잔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여행과 출장으로 찾은 도쿄는 마치 15년째 잠에 빠진 내 책장 속 <시티헌터>처럼 조금씩 그 빛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2017년, 일본 크래프트 신을 체험하고자 떠난 도쿄 출장에서 <시티헌터>와 뜻밖의 재회를 했다. 힙하다는 펍을 찾아 쏘다니던 골목 어귀, 2019년 <시티헌터>의 귀환을 알리는 포스터가 나를 멈춰 세웠다. 사에바 료가 20년 만에 극장으로 돌아온다는 홍보 포스터였다.
<시티헌터>가 돌아온다고? 혹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는 귀국 후 일상을 사느라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2년 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잊고 있던 도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시티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 이 철 지난 작품을 한국 영화관에서도 볼 수 있다니, 나 같은 올드팬들이 꽤 있구나. 그럼에도 극장으로는 영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본 만화를 몰래 보던 십대의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은 심정이 여전히 남아있던 것일까. 결국 선택한 방법은 OTT(유튜브 영화)를 통한 시청. 마침내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스마트 폰을 통해서 사에바 료와 카오리를 만날 수 있었다.
20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은 <시티헌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세계관은 물론 시대를 풍미하던 OST, <시티헌터>만의 지극한 클리셰까지, 올드팬의 감성을 건드리는 장치가 곳곳에 놓여있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예전 에피소드를 오마주한 짧은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맥주는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에바 료와 카오리가 들고 있던 맥주는 한눈에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노란색 바탕의 파란색 글자,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였다.
사에바 료의 맥주,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캔
ⓒ 윤한샘
산토리는 맥주 업계의 후발 주자였다. 1899년 토리이 신지로의 상점에서 출발해 위스키와 와인으로 기반을 다진 뒤, 1963년에야 맥주 시장에 진입했다. 1960년대 올림픽을 치른 일본은 급격한 경제성장 한가운데 있었다. 맥주의 대중화를 읽은 산토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기린이 지배하던 시장에서 산토리 맥주는 오랜 기간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03년 출시한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는 산토리가 후발 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었다. 가격 경쟁을 벗어나 가치와 풍미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은 일본 맥주에 '프리미엄'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정착시켰다.
20년 만에 귀환한 <시티헌터>에 왜 산토리 맥주가 등장했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두 존재가 공유하는 무대가 바로 도쿄이기 때문이다. 1963년, 산토리의 첫 맥주는 도쿄도 후추시 무사시노 양조장에서 태어났다.
▲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예쁜 전용잔으로 유명하다
ⓒ 윤한샘
산토리 위스키가 오사카의 술이라면, 산토리 맥주는 도쿄의 술이다. 그래서 신주쿠 해결사 사에바 료의 손에 도쿄 맥주 산토리가 들려 있는 장면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마치 PPL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한국 드라마처럼, <시티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를 숨기지 않는다. 컬래보래이션인지 단순한 PPL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장면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한동안 맥주를 고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로 손이 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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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는 <시티헌터>의 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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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실사판 <시티헌터>.
ⓒ 넷플릭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티헌터>는 어떻게 다가올까? <시티헌터>를 보고 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억압과 금기의 시대에 십대였던 나에게 <시티헌터>는 모험과 낭만이 넘치는 세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한 불편함이 앞선다.
재작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실사판 <시티헌터>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유치한 연출력과 부족한 연기력을 차치하고라도 시대를 읽지 못한 성의식과 세계관에 한숨만 나왔다.
여성을 상품화하고 범죄와 다름없는 성희롱을 서슴지 않고 일삼는 사에바 료의 행동과 철 지난 탈아입구가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짜증을 유발했다. 아마 내가 올드팬이 아니었다면 저질 B급 영화로 취급하고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을 게다.
문화의 성숙은 의식의 성숙을 낳는다. 사실 지난 10년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는 내 속에 잔재하고 있던 일본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사라지게 했다. 시기와 질투도, 동경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해적판 만화의 오래된 종이 속 서양인을 닮은 일본 영웅을 훔쳐보던 소년은 이제는 누군가를 닮으려 애쓰지 않는다.
신주쿠역의 XYZ는 추억의 한 페이지일 뿐, 성숙한 어른에게 더 이상 영웅은 필요치 않다. 안녕, <시티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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