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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반전의 세계사’] 동유럽의 오리엔탈리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폴란드 바르샤바 구시가지. [중앙포토]
동유럽 사람들은 ‘착한 백 야마토게임장 인’이라고 자부한다. 일리가 있다. 식민주의적 폭력과 자본주의적 수탈의 가해자인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은 제3세계처럼 식민주의의 피해자였다. 중세의 발틱과 폴란드 등은 게르만의 식민주의적 팽창에 시달렸고, 합스부르크 제국 치하의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도 역시 게르만의 헤게모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근대에 이르면 동유 사아다쿨 럽은 서유럽의 발전된 자본주의에 농산물과 원료를 제공하는 배후지로 머물렀다. 서유럽이 근대적 국가체제와 시장경제, 민주주의의 역동적 발전의 길로 들어설 때, 동유럽 국가들은 봉건적 반동의 재판 농노제와 전근대적 군주제가 지배하는 주변부였다.
‘동’유럽은 유럽 속의 ‘동양’이었다. 1989년 냉전이 해체되고 소비에트 블록이 무너지자, 헝가 바다신2다운로드 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비시그라드 4개국은 자신들은 동유럽이 아니라 중부유럽이라고 못박았다. 더 이상 유럽의 ‘동양’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이들은 공산주의 블록 국가 중 유럽연합에 가장 먼저 가입함으로써 ‘동유럽’의 딱지를 뗐다.
그런데 중부유럽이 되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중부유럽을 뜻하는 독일어 ‘Mitteleuropa’에 황금성사이트 강하게 배어있는 게르만 헤게모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폴란드의 루블린 학파가 찾아낸 것은 2차 대전 당시 오스카 할레츠키(Oskar Halecki)가 사용한 ‘중동부유럽(Europa Środkowo-Wschodnia)’이었다.
시장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였던 할레츠키는, ‘중동부유럽’이라는 지정학적 명명법을 통해 조국 바다신릴게임 폴란드를 동유럽의 ‘서양’으로 위치 짓고 러시아나 기타 동유럽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는 2차 대전의 상황에서 독일권의 ‘중부유럽’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프롤레타리아 형제애에 은폐된 인종주의
오스트리아 비엔나 인간 동물원의 아샨티. 식민주의 피해자였던 ‘착한 백인’ 동유럽 역시 인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동유럽’ ‘중부유럽’ ‘중동부유럽’ 무어라 부르던, 변치 않는 사실은 이들이 서유럽의 주변부였다는 점이다. 식민주의적 서유럽에 비해 자신은 ‘덜’ 백인이고 따라서 ‘착한 백인’이라고 자위한 것은 그 주변부적 위치 덕분이다. 식민주의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역사적 위치성이, 백인 우월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착한 백인’이라는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적 위계질서에서 동유럽의 백인성은 ‘백인성의 문턱’ ‘주변적 백인성’ 등의 표현에서 보듯이 애매하기 짝이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백인성의 애매한 위치 때문에, 동유럽 인종주의는 완전한 유럽의 백인으로 인정받으려는 강한 열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단지 ‘착한 백인’이라는 환상이 이글거리는 인종주의적 욕망을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2차 대전 이후 동유럽의 학계나 지식계에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문제의식이 희박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종주의를 자본주의의 폐해로 환원시키는 냉전적 환원론은 동유럽의 공산주의 블록에 팽배한 자기 안의 인종주의를 은폐했다. 사회주의적 인종주의가 보편적 평등의 구호 아래 공산주의 동유럽의 지식과 일상을 지배했다.
반시온주의의 이름으로 횡행한 민족 공산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 집시로도 알려진 로마와 신티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과 박해, 더 ‘동쪽’의 슬라브 이웃이나 ‘어두운’ 피부의 남슬라브족에 대한 ‘더 서구적이고’ ‘더 하얀’ 슬라브들의 오리엔탈리즘 등을 보면, 프롤레타리아 형제애의 이름 아래 은폐된 사회주의적 인종주의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소련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복지 식민주의’의 이름 아래 자행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에 대한 붉은 식민주의, 전체 인구 600만 명 중 약 20~40%의 사망자를 낳은 카자흐스탄의 대기근(적절한 통계가 불가능한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사정도 비슷할 것이다), 카자흐스탄 초지에서 실시한 450회에 달하는 핵폭탄 실험과 유목민들의 피폭 등등의 참상은 서유럽의 식민주의적 폭력에 못지않다.
동유럽 ‘착한 백인’들의 식민주의적 욕망과 인종주의적 폭력성은 이미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폴란드 작가 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소설 『복수』(1908)에서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 3국의 점령 아래 시달리는 폴란드인들이 영국령 아프리카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아 선주민을 문명화시키고 신천지를 개척하는 상상을 펼친다.
실제로 1882~85년에는 스테판 숄츠-로고진스키가 이끄는 탐험대가 카메룬에 폴란드 식민지를 건설해 독립의 영토적 기반을 확보하려는 있기도 했다. 이 돈키호테적 카메룬 탐험대는 폴란드의 문학적 상상 속에서 종종 콜럼버스와 비견되며 피압박민족 폴란드인들의 식민주의적 욕망을 부추겼다. 폴란드가 배출한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극우 민족주의자였던 헨릭 시엔키에비츠 역시 아프리카에 대한 폴란드 최초의 이 탐험대를 지지한 바 있다. 이 탐험으로 폴란드인들은 유럽 열강과 나란히 미개한 땅을 개척할 수 있는 식민주의적 능력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외부를 식민화할 능력이 없었던 폴란드인들의 식민주의적 열망은 내부를 향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 남동부를 포함하는 갈리치아가 폴란드의 인디아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우리의 인디아’에 사는 우크라이나 농민들과 유대인들은 쉽게 국내적 식민주의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의 ‘인도부’에서 근무했던 스타니스와프 쉬체파노프스키가 ‘유럽의 인디아’ 이미지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는 영국 식민주의가 인도를 야만으로 규정할 때 사용한 ‘발전’ ‘문명’ ‘야만’의 개념 등을 갈리치아로 그대로 가져와 적용했다. 영국의 글로벌 식민주의가 동유럽으로 들어와 국내적 식민주의의 개념으로 전화된 전형적인 예였다.
좌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닌의 중앙집중제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판은 타당하지만, ‘타타르 마르크스주의’라는 비하적 표현은 볼셰비즘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을 잘 보여준다. 붉은 오리엔탈리즘은 좀 더 동쪽의 변경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결정했다. 1920년 독립 폴란드 군대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를 무단 점령하자, 폴란드 사회당의 언론은 한결같이 환영의 뜻을 표했다. 우크라이나 마르크스주의자 이반 프랑코는 갈리치아의 폴란드 사회민주당의 후견인인 듯한 태도에 분노를 쏟아냈다.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 등 더 ‘동쪽’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폴란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태도는 폴란드에 대한 독일 사회민주당의 오리엔탈리즘적 태도와 다를 바 없었다.
외부 식민화 능력 없어 ‘내부 인디아’ 박해
폴란드어 잡지에 실린 싱할라 인종 쇼 삽화. [사진 위키미디어]
1918년 11월 11일 독립을 선포하고 수립된 폴란드 제2공화정이 반제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서구적 식민주의를 꿈꾸는 이율배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놀랍지 않다. 신생국 체코슬로바키아가 파리강화회의에서 아프리카와 캄차카 반도에 대한 식민주의의 지분을 요청한 것도 흥미롭다. 신생 폴란드의 식민주의적 욕망은 1934년 만든 예비 검속 수용소 ‘베레자 카츠카’에서 잘 드러난다. 우크라이나인, 벨로루스인, 유대인, 공산주의자, 로마와 신티 등 폴란드 내부의 타자들을 규율하기 위한 이 강제수용소는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식민주의적 욕망이 내부를 향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대학 내의 유대인 학생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을 유도한 ‘게토 벤치’ 등의 소소한 식민주의적 장치 등도 만연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유행한 ‘인종 쇼’였다. 유럽 외부에 대한 제국의 시선으로 가득 찬 서유럽의 ‘인간동물원’보다 동유럽의 ‘인종 쇼’는 더 복합적이었다. 바르샤바·우치·크라쿠프 등에서는 ‘싱할라·타밀 카라반 쇼’ 공연뿐 아니라, 유대인, 로마/신티, 타타르, ‘동양적’으로 상상된 카프카스 소수민족들이 ‘내부의 이국인’으로 무대로 올려졌다. 동유럽의 ‘인종 쇼’는 ‘문명-야만’ ‘서구-동방’ 이분법의 문화적 학습을 통해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적 지식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인·류큐인·청국인·아이누·인도인·터키인·아프리카인 등을 전시한 오사카의 ‘내국권업박람회’가 열린 것도 동유럽의 인종 쇼와 거의 같은 시기였다.
서유럽 식민주의와 달리 ‘착한 백인’을 자처한 동유럽이나 서양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민족해방의 기수로 자처한 일본이나, 식민주의를 내재화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 민족의 식민주의적 결백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임지현 서강대 석좌교수. 서강대에서 서양사 전공. 대표 저서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2021), 『기억 전쟁』(2019), 『대중 독재』(2004),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1999) 등이 있다.
[임지현 ‘반전의 세계사’] 동유럽의 오리엔탈리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폴란드 바르샤바 구시가지. [중앙포토]
동유럽 사람들은 ‘착한 백 야마토게임장 인’이라고 자부한다. 일리가 있다. 식민주의적 폭력과 자본주의적 수탈의 가해자인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은 제3세계처럼 식민주의의 피해자였다. 중세의 발틱과 폴란드 등은 게르만의 식민주의적 팽창에 시달렸고, 합스부르크 제국 치하의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도 역시 게르만의 헤게모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근대에 이르면 동유 사아다쿨 럽은 서유럽의 발전된 자본주의에 농산물과 원료를 제공하는 배후지로 머물렀다. 서유럽이 근대적 국가체제와 시장경제, 민주주의의 역동적 발전의 길로 들어설 때, 동유럽 국가들은 봉건적 반동의 재판 농노제와 전근대적 군주제가 지배하는 주변부였다.
‘동’유럽은 유럽 속의 ‘동양’이었다. 1989년 냉전이 해체되고 소비에트 블록이 무너지자, 헝가 바다신2다운로드 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비시그라드 4개국은 자신들은 동유럽이 아니라 중부유럽이라고 못박았다. 더 이상 유럽의 ‘동양’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이들은 공산주의 블록 국가 중 유럽연합에 가장 먼저 가입함으로써 ‘동유럽’의 딱지를 뗐다.
그런데 중부유럽이 되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중부유럽을 뜻하는 독일어 ‘Mitteleuropa’에 황금성사이트 강하게 배어있는 게르만 헤게모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폴란드의 루블린 학파가 찾아낸 것은 2차 대전 당시 오스카 할레츠키(Oskar Halecki)가 사용한 ‘중동부유럽(Europa Środkowo-Wschodnia)’이었다.
시장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였던 할레츠키는, ‘중동부유럽’이라는 지정학적 명명법을 통해 조국 바다신릴게임 폴란드를 동유럽의 ‘서양’으로 위치 짓고 러시아나 기타 동유럽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는 2차 대전의 상황에서 독일권의 ‘중부유럽’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프롤레타리아 형제애에 은폐된 인종주의
오스트리아 비엔나 인간 동물원의 아샨티. 식민주의 피해자였던 ‘착한 백인’ 동유럽 역시 인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동유럽’ ‘중부유럽’ ‘중동부유럽’ 무어라 부르던, 변치 않는 사실은 이들이 서유럽의 주변부였다는 점이다. 식민주의적 서유럽에 비해 자신은 ‘덜’ 백인이고 따라서 ‘착한 백인’이라고 자위한 것은 그 주변부적 위치 덕분이다. 식민주의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역사적 위치성이, 백인 우월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착한 백인’이라는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적 위계질서에서 동유럽의 백인성은 ‘백인성의 문턱’ ‘주변적 백인성’ 등의 표현에서 보듯이 애매하기 짝이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백인성의 애매한 위치 때문에, 동유럽 인종주의는 완전한 유럽의 백인으로 인정받으려는 강한 열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단지 ‘착한 백인’이라는 환상이 이글거리는 인종주의적 욕망을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2차 대전 이후 동유럽의 학계나 지식계에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문제의식이 희박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종주의를 자본주의의 폐해로 환원시키는 냉전적 환원론은 동유럽의 공산주의 블록에 팽배한 자기 안의 인종주의를 은폐했다. 사회주의적 인종주의가 보편적 평등의 구호 아래 공산주의 동유럽의 지식과 일상을 지배했다.
반시온주의의 이름으로 횡행한 민족 공산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 집시로도 알려진 로마와 신티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과 박해, 더 ‘동쪽’의 슬라브 이웃이나 ‘어두운’ 피부의 남슬라브족에 대한 ‘더 서구적이고’ ‘더 하얀’ 슬라브들의 오리엔탈리즘 등을 보면, 프롤레타리아 형제애의 이름 아래 은폐된 사회주의적 인종주의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소련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복지 식민주의’의 이름 아래 자행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에 대한 붉은 식민주의, 전체 인구 600만 명 중 약 20~40%의 사망자를 낳은 카자흐스탄의 대기근(적절한 통계가 불가능한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사정도 비슷할 것이다), 카자흐스탄 초지에서 실시한 450회에 달하는 핵폭탄 실험과 유목민들의 피폭 등등의 참상은 서유럽의 식민주의적 폭력에 못지않다.
동유럽 ‘착한 백인’들의 식민주의적 욕망과 인종주의적 폭력성은 이미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폴란드 작가 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소설 『복수』(1908)에서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 3국의 점령 아래 시달리는 폴란드인들이 영국령 아프리카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아 선주민을 문명화시키고 신천지를 개척하는 상상을 펼친다.
실제로 1882~85년에는 스테판 숄츠-로고진스키가 이끄는 탐험대가 카메룬에 폴란드 식민지를 건설해 독립의 영토적 기반을 확보하려는 있기도 했다. 이 돈키호테적 카메룬 탐험대는 폴란드의 문학적 상상 속에서 종종 콜럼버스와 비견되며 피압박민족 폴란드인들의 식민주의적 욕망을 부추겼다. 폴란드가 배출한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극우 민족주의자였던 헨릭 시엔키에비츠 역시 아프리카에 대한 폴란드 최초의 이 탐험대를 지지한 바 있다. 이 탐험으로 폴란드인들은 유럽 열강과 나란히 미개한 땅을 개척할 수 있는 식민주의적 능력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외부를 식민화할 능력이 없었던 폴란드인들의 식민주의적 열망은 내부를 향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 남동부를 포함하는 갈리치아가 폴란드의 인디아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우리의 인디아’에 사는 우크라이나 농민들과 유대인들은 쉽게 국내적 식민주의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의 ‘인도부’에서 근무했던 스타니스와프 쉬체파노프스키가 ‘유럽의 인디아’ 이미지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는 영국 식민주의가 인도를 야만으로 규정할 때 사용한 ‘발전’ ‘문명’ ‘야만’의 개념 등을 갈리치아로 그대로 가져와 적용했다. 영국의 글로벌 식민주의가 동유럽으로 들어와 국내적 식민주의의 개념으로 전화된 전형적인 예였다.
좌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닌의 중앙집중제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판은 타당하지만, ‘타타르 마르크스주의’라는 비하적 표현은 볼셰비즘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을 잘 보여준다. 붉은 오리엔탈리즘은 좀 더 동쪽의 변경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결정했다. 1920년 독립 폴란드 군대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를 무단 점령하자, 폴란드 사회당의 언론은 한결같이 환영의 뜻을 표했다. 우크라이나 마르크스주의자 이반 프랑코는 갈리치아의 폴란드 사회민주당의 후견인인 듯한 태도에 분노를 쏟아냈다.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 등 더 ‘동쪽’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폴란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태도는 폴란드에 대한 독일 사회민주당의 오리엔탈리즘적 태도와 다를 바 없었다.
외부 식민화 능력 없어 ‘내부 인디아’ 박해
폴란드어 잡지에 실린 싱할라 인종 쇼 삽화. [사진 위키미디어]
1918년 11월 11일 독립을 선포하고 수립된 폴란드 제2공화정이 반제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서구적 식민주의를 꿈꾸는 이율배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놀랍지 않다. 신생국 체코슬로바키아가 파리강화회의에서 아프리카와 캄차카 반도에 대한 식민주의의 지분을 요청한 것도 흥미롭다. 신생 폴란드의 식민주의적 욕망은 1934년 만든 예비 검속 수용소 ‘베레자 카츠카’에서 잘 드러난다. 우크라이나인, 벨로루스인, 유대인, 공산주의자, 로마와 신티 등 폴란드 내부의 타자들을 규율하기 위한 이 강제수용소는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식민주의적 욕망이 내부를 향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대학 내의 유대인 학생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을 유도한 ‘게토 벤치’ 등의 소소한 식민주의적 장치 등도 만연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유행한 ‘인종 쇼’였다. 유럽 외부에 대한 제국의 시선으로 가득 찬 서유럽의 ‘인간동물원’보다 동유럽의 ‘인종 쇼’는 더 복합적이었다. 바르샤바·우치·크라쿠프 등에서는 ‘싱할라·타밀 카라반 쇼’ 공연뿐 아니라, 유대인, 로마/신티, 타타르, ‘동양적’으로 상상된 카프카스 소수민족들이 ‘내부의 이국인’으로 무대로 올려졌다. 동유럽의 ‘인종 쇼’는 ‘문명-야만’ ‘서구-동방’ 이분법의 문화적 학습을 통해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적 지식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인·류큐인·청국인·아이누·인도인·터키인·아프리카인 등을 전시한 오사카의 ‘내국권업박람회’가 열린 것도 동유럽의 인종 쇼와 거의 같은 시기였다.
서유럽 식민주의와 달리 ‘착한 백인’을 자처한 동유럽이나 서양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민족해방의 기수로 자처한 일본이나, 식민주의를 내재화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 민족의 식민주의적 결백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임지현 서강대 석좌교수. 서강대에서 서양사 전공. 대표 저서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2021), 『기억 전쟁』(2019), 『대중 독재』(2004),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199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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