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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출근을 오라니깐. 신과 다르게 올려 변명이라도러시아계 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1900~1999). 사진은 ‘나탈리 사로트: 사이의 삶’이란 제목으로 나온 작가의 전기(앤 제퍼슨 지음,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 2020, 국내 미출간)의 겉표지다.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날마다 새로운 것이 쏟아지고 금세 닳아버리는 시대에, 이 질문 앞에 선 당신의 기분을 안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방식, 새로운 감각. 도대체 새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말 같다. 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새로운가가 아니라, 무엇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는가를 묻는 일일지도 모른 릴게임뜻 다. 모든 ‘새로움’은 백지상태에서 시작되지 않으니까. 그것은 언제나 기존의 질서를 흔들고, 오랫동안 당연했던 전제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부정과 의심, 거기가 우리의 시작점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부정하고 의심하는가? 당신이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가치는 무엇인가?
20세기 중반, 유럽 역시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야마토게임연타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홀로코스트 같은 비극을 거치며 인간의 이성과 내면의 일관성, 서사의 질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언어가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얼마나 순진했던가. 문학 역시 오랫동안 유지해온 전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인물의 심리를 따라야 한다는 규범,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확신, 서사는 원인과 결과로 황금성게임랜드 조직될 수 있다는 믿음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새로운 문학적 실험이 필요해진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새로워질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소설 그 자체로부터. 발자크로 대표되는 프랑스 전통 소설의 자리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작가들은 플롯을 비우고, 인물이 아닌 사물과 공간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간을 파편화하고, 서사보다 의식의 흐름에 집 사이다릴게임 중한다. 처음에 평론가들은 이를 ‘앙티로망’(반소설)이라 불렀다. 전통적 소설을 정면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들을 ‘부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문학적 질서를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누보로망’(새로운 소설)이라고 부르게 된다.
알랭 로브그리예, 나탈리 사로트, 미셸 뷔토르, 클로드 시몽으로 대표되는 누보 릴게임종류 로망은 서사의 해체라는 큰 틀 안에서 각기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나탈리 사로트가 선택한 방식은 조금 특별하다. 다른 작가들이 소설의 겉면, 다시 말해 플롯과 구조를 해체했다면, 사로트는 더 근원적인 도구, 언어 자체를 의심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어릴 때 프랑스로 이주했던 사로트는 법학을 공부하고 잠시 변호사로 활동한다. 작가는 이 독특한 이력에 대해 ‘말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정확히는 문어가 아닌 구어에 대한 애착이었다. 그는 구어만이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것들을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사로트에게 진실한 언어는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따라가는 언어였다. 그는 완성된 문장은 그 감각을 한 박자 늦게 쫓아갈 뿐이고, 언어가 뒤늦게 도착하는 순간, 감각의 본래 움직임은 흐려지며, 그 흐려짐을 문학이 경계해야 할 손실이라 봤다. 사로트가 포착하려는 것은 생각과 개념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감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전류였고, 그는 이것을 트로피슴이라 불렀다.
사로트의 트로피슴은 본래 생물학 용어로 빛, 중력, 습도 같은 외부 자극에 반응해 식물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빛을 향해 뻗는 잎의 향일성,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뿌리를 뻗는 향지성, 특정 화학 성분을 향해 움직이는 세포의 향화성. 사로트는 이 ‘향성’의 개념을 빌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본능적 움직임, 의식의 가장자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규정할 수 없는 감각을 말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의 감정도 식물처럼 의식 이전의 움직임을 갖고 있고, 그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믿었다. 인간의 진짜 심리는 말하기 이전에 있고, 기존의 문학적 형식으로는 이것이 포착 불가능하기에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언어화된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그는 이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언어의 형식을 갖추기 전의 무언가를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사로트가 선택한 방식은 감각을 심리 대신 물리학적 운동으로 포착하는 것이었다. 감각은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으며, 압력, 저항, 밀고 당김 같은 역학적 힘에 가깝다. 그러니 감각을 감정의 이름으로 번역하는 대신, 감각이 몸 안에서 어떤 힘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방향으로 기울고 미끄러지는지를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사로트의 글에는 설명조의 문장이나 개념어, 감정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서술이 없다. 그는 압력처럼 밀려오는 말들을 다룬다. 언어가 아니라 언어가 생성되는 과정을 쓴다. 이러한 글쓰기는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신적 실질을 드러내거나 재창조하는 일”이라는 그의 문학관을 잘 드러낸다. 새로운 정신적 실질이란 무엇인가. 이미 존재했지만, 아직 말할 수 없었던 것, 이전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내면. 다시 말해 새로운 내면이다. 이것만큼 새로운 것이 또 있을까. 작고, 미세하고, 가장자리에 있으며 깊숙이 있는 것. 이것이 사로트가 말하는 새로움의 정의이고, 그가 말하는 인간의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다. 반가운 일이 아닌가. 우리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 안의 미세한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 안의 아직 닳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사로트는 말한다. 문학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내면을 탄생시키는 예술이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책 한권을 읽으며 구해야 할 것은 정보나 지식이 아닌 조금은 다른 내가 되는 경험일 것이다. 한나절의 빛으로도 싹을 틔우는 식물처럼, 읽고 나면 우리 안에 새로운 무언가가 움트지 않겠는가. 작고 미세하지만, 기존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새로움이 이미 당신과 내 안에 있다.
신유진 작가·번역가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날마다 새로운 것이 쏟아지고 금세 닳아버리는 시대에, 이 질문 앞에 선 당신의 기분을 안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방식, 새로운 감각. 도대체 새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말 같다. 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새로운가가 아니라, 무엇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는가를 묻는 일일지도 모른 릴게임뜻 다. 모든 ‘새로움’은 백지상태에서 시작되지 않으니까. 그것은 언제나 기존의 질서를 흔들고, 오랫동안 당연했던 전제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부정과 의심, 거기가 우리의 시작점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부정하고 의심하는가? 당신이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가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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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부터 새로워질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소설 그 자체로부터. 발자크로 대표되는 프랑스 전통 소설의 자리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작가들은 플롯을 비우고, 인물이 아닌 사물과 공간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간을 파편화하고, 서사보다 의식의 흐름에 집 사이다릴게임 중한다. 처음에 평론가들은 이를 ‘앙티로망’(반소설)이라 불렀다. 전통적 소설을 정면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들을 ‘부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문학적 질서를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누보로망’(새로운 소설)이라고 부르게 된다.
알랭 로브그리예, 나탈리 사로트, 미셸 뷔토르, 클로드 시몽으로 대표되는 누보 릴게임종류 로망은 서사의 해체라는 큰 틀 안에서 각기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나탈리 사로트가 선택한 방식은 조금 특별하다. 다른 작가들이 소설의 겉면, 다시 말해 플롯과 구조를 해체했다면, 사로트는 더 근원적인 도구, 언어 자체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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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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