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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술에서 실험성 높은 작품 활동을 펼치며, 한국 현대 사진의 지평을 넓히고 개척해 온 선구자.’
30일 열리는 ‘2025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예술 부문 최초로 사진작가의 이름이 호명됐다. 구본창(72). 호암재단은 1991년부터 학술·예술 및 사회 발전과 인류 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한국계 인사를 세계에 알려왔다. 올해 제35회 시상식까지 182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그동안 호암상 예술 부문 수상자 중 미술계에선 백남준(1995), 이우환(주식시뮬레이션
2001), 김수자(2015), 서도호(2017), 이불(2019) 등이 이름을 올렸다. 구본창 작가의 수상은 1980년대부터 이어진 개인의 반세기 업적은 물론 사진을 현대 예술 장르로서 온전히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어쩌면 모두가 카메라를 손에 쥐고 다니는 시대, 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요즘이어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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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서 필름을 확인하는 구본창 사진작가.


지난 2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구본창 작가의 ‘스튜디오9’에서 그를 미리 만났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달의 궤적: 한국의 달항아리(Luna인텔주식
r Phases: Korean Moon Jars)’와 로스앤젤레스(LA)의 프랜시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룹전을 돌아본 뒤 귀국한 다음날이었다. 오는 8월 일본 오사카, 10월 스페인 마드리드 전시도 앞둔 그는 꽉 찬 스케줄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감사한 일이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가투자수익율
없었다면 호암상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먼 길을 돌아왔는데, 고마운 사람들이 하나씩 징검다리를 놓아준 것 같습니다.”



구 작가가 사용하는 후지필름 GFX 100 II 카메라.


구본창 작가의 국내 첫 공립미술관급등주식
개인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구본창의 항해’(2023년 12월 14일~2024년 3월 10일)였다.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이후 생존 작가 전시로는 최다 관람객인 11만 명이 다녀갔다. 전시는 지난해 11월 광주로 장소를 옮겨 지난 3월 30일까지 ‘구본창: 사물의 초상’으로 이어졌다. 두 번의 전시는 ‘달항아리 사진작가’로 알려진 그를 다시 보게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1980년대 말 독일 함부르크조형미술대 사진디자인학 석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기록’이라는 전통적 틀을 깼다. 사진 위에 실과 천으로 콜라주를 하거나 인화지를 재봉틀로 꿰매고(아! 대한민국·태초에 시리즈), 판화처럼 필름을 긁어내는가 하면(탈의기·기억의 회로 시리즈) 아예 인화된 사진 일부를 불에 그슬리기도(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시리즈) 했다. 주관적인 연출 사진인 ‘메이킹 포토’의 새 장을 여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인물과 사물, 역사와 자연, 영화와 패션까지 사진가로서 그의 영역엔 경계가 없었다.
“저는 다각형의 인간이에요. 호기심이 많았고, 어렸을 때부터 버려진 것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자연스럽게 이끌린 것 같아요. 3남 3녀 중 다섯째였는데, 워낙 내성적이고 조용해서 혼자 버려진 것들을 수집했어요. 화가를 꿈꿨지만 집안에서 반대해 경영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유학을 떠났는데,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 시기였어요.”



1980년대 독일 유학 때부터 써온 카메라 가방.


지독한 ‘수집벽’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의 작업실 곳곳에는 지하부터 3층 끝까지 전 세계에서 모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솔길 걷듯 걸어야 하는 방이지만, 책장과 벽장 안은 마치 잘 정리된 박물관과 같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쿠션인데, 오페라 무대의 소품 같죠? 안에 솜을 다 빼고 가져왔고요. 이건,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버려진 캔으로 만든 트럭 모양 장난감이고, (반원형 뿔 모양의 거대한 나무틀을 가리키며) 이건 옛날 선비들이 쓴 모자였어요, 모자요.”
‘어차피 창작자에게 고독이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함께 가야 할 동반자다.’ 그가 저서 <공명의 시간을 담다>에 쓴 이 글귀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한국의 사진과 사진작가를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획자가 구본창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 후 귀국길에 인연이 이어져 1985년 도쿄에서 열린 100명의 사진전 ‘일본의 하루’에 초청받았어요. 국제 전시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봤고, 한국에 돌아와 새 시대에 맞는 한국의 사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당시 한국 현대미술을 가장 앞서, 가장 크게 전시하던 곳은 워커힐미술관. 1988년 그는 ‘사진·새시좌(視座)’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실험적 사진을 찍는 한국인 사진작가 8명의 사진을 모았고, 흥행으로 이어져 총 세 번의 사진전이 더 열렸다. 그의 눈은 세계로 향했다.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대형 사진 페스티벌 ‘포토페스트’(2000)에 전시 기획자로 참여했다. 2014년 프랑스 아를포토페스티벌에 큐레이터로 나서는 등 무수히 많은 사진전을 직접 기획했다.
관찰과 호기심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그는 꽤 오랜 시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빠져 있다.
“다빈치는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정말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았던 인물이에요. 그런 부분에서 공감하며 탐구했는데, 알수록 더 대단하죠. 요리사이자 수리공, 발명가이자 ‘다 잘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삶의 태도들이 영원불멸의 걸작 안에 겹겹이 수렴한 것 같습니다. 다빈치를 깊이 알고 동경하다, 스푸마토 기법(물체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해 깊이감을 더하는 방법)도 탐구했어요. 모나리자는 물론이고 그의 그림 속 인물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아우라가 느껴지잖아요. 저의 달항아리 사진들엔 어쩌면 다빈치를 향한 오랜 애정과 경의가 녹아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남=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