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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라기보다 도시 한복판 난투극의 한 장면 같다. 무용수의 발이 다른 무용수의 복부를 짓누르고 지나간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바닥에 철퍼덕 엎드린 무용수는 이번에는 다리가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간다. 마치 실제처럼 잔혹하게 재현된 신체적 충돌이 남기는 묘한 불편함. 현대무용 안무가 김성훈(43)이 신작 '핑크'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감정이다.
28~3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핑크'는 '실험적 시도'를 내세운 공연예술 축제 싱크 넥스트 참가작 중 가장 '매운맛' 공연이 될 예정이다. 무용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폭력, 노출 등 민감한 소재를 경고하는 '트리거 워닝'이 사전 공지돼 백경게임
있고, 입장 연령도 19세 이상으로 제한된다.
25일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만난 김성훈은 "폭력적 콘텐츠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무용은 꼭 아름다움만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오래 해 왔고, 해 보지 않은 공연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인 김성훈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 아크람 칸 댄스컴퍼니에서황금성
단원으로 활동하며 유럽 무용을 경험했다. 현대무용뿐 아니라 한국무용·발레 등 장르 간 협업은 물론 뮤지컬, 오페라 분야까지 넘나들었고, 최근엔 '칼 군무의 정수'라 불린 서울시무용단 '일무'의 공동 안무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일무'를 준비할 때는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았지만, '핑크'는 규칙을 만들 수조차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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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신체 충돌로 만든 카타르시스



안무가 김성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남자 무용수 8명이 출연하는 '핑크'에는 자극과 폭력을 상징하는 장치가 총망라된다. 피범벅이 된 무대에서 벌어지는 직접적 폭력OCI머티리얼즈 주식
에, 선지와 내장 덩어리가 소품으로 쓰이고 나체로 움직이는 장면도 있다. 프랑스 출신의 시각예술가 겸 음악가 해미 클레멘세비츠가 작곡한 음악에 맞춰 잔혹한 신체 언어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진다. 굳이 서사를 찾자면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 속 무인도 소년들의 권력 투쟁을 연상케 한다.
작품 취지를 묻자 김성훈은 프랑스 극작가 앙코콤 주식
토냉 아르토(1896~1948)가 제창한 '잔혹극' 이론을 언급했다. 감동과 교훈을 주려는 연극을 '기만'으로 본 아르토는, 충격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통해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훈은 이 같은 잔혹극의 개념을 빌려, "폭력과 잔혹의 자극으로 새로운 감각과 세계관을 넓히고, 각자가 느끼는 불쾌감의 기준점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으로 쓴 '핑크'라는 색상은 이중적이다. 흔히 여성스럽고 순수함을 상징하지만, 상처가 아문 흔적이나 당황스러움에 물든 얼굴빛 역시 핑크다. 그는 "관람 도중 당혹스러운 순간이 견디기 힘들다면 언제든 자리를 떠나도 좋다"며 "중도 퇴장 자체도 퍼포먼스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는 불편함보다는 관객이 충격에 가까운 체험을 하길 원했다"고도 했다.
그는 당분간은 '핑크' 같은 작품을 다시 만들 생각은 없다. "다음엔 제가 잘하는 화사한 공연을 하려고 해요. 잔혹극은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거든요."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