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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무개(40)씨는 2년 전부터 쿠팡에서 책을 산다. 쿠팡 와우회원이라 책 한권만 사도 무료배송을 받을 수 있는데다, 그 무렵 온라인 서점의 무료 배송 기준이 1만원에서 1만5천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예스24를 주로 이용하던 하아무개(31)씨도 해킹 사건 뒤로는 로켓배송이 가능한 쿠팡으로 책을 구매한다고 했다.
쿠팡이 온라인 도서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세력연구소
. 특히 주 소비자가 주부인 ‘아동도서’나 ‘요리책’의 경우 쿠팡이 온라인서점 3사(교보문고·예스24·알라딘)를 제치고 매출 1위인 것으로 출판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출판사들도 쿠팡과 직거래를 늘리고 있다. 몇달 전 쿠팡과 직거래 계약을 맺은 인문·교육 분야 출판사 대표 ㄱ씨는 “생활용품 분야를 쿠팡이 완전히 장악해서 생활용품 쇼핑하알라딘릴
다가 연관 책도 같이 사는 식으로 패턴이 바뀌는 것 같다”고 했다. ㄱ씨는 “8월 매출을 보면, 교보문고가 가장 많고 2등이 쿠팡이다. 쿠팡 매출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6500원에 납품하던 책, 쿠팡에는 6천원에 내줘야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접점이 생겼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쿠팡이 출판업계의 생태계를 해치어린이경제캠프
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소매가격 대비 납품원가를 뜻하는 ‘공급률’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출판사나 도서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간 도서 유통시장에서 공급률은 통상 65% 안팎으로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정가 1만원인 책이라면 출판사는 6500원을 받고 서점 등 유통업체로 넘긴다. 공급률이 낮을수록 유통업체가 이익을 많이 가져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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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매년 계약을 갱신하고, 그때마다 공급률을 낮추고 있다고 한다. 한번 공급률을 계약하면 동일 조건을 장기간 유지하는 기존 온라인서점의 유통 관행과 다르다. 출판사 대표 ㄴ씨는 “몇년 전 쿠팡과 첫 거래를 할 때는 공급률 65%로 계약했는데 현재 60% 수준까지 내려왔다”며 “이렇게 매년 공급률을 낮추는 것은 그간 출판업계에서는 없던 20일선매매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표 ㄷ씨는 “다른 온라인서점에는 65%로 공급하는데 쿠팡과는 60%에 계약했다. 더 영세한 출판사에는 55%를 요구한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쿠팡에서 책 팔려면…‘돈’ ‘돈’ ‘돈’
이에 더해 쿠팡은 일부 출판사가 매출을 늘릴 때마다 매출의 일정 비율을 ‘성장장려금’ 명목으로 받는다. 한겨레가 입수한 한 출판사와 쿠팡의 성장장려금 약정서를 보면, 매달 구간별로 목표 금액이 설정돼 있고 출판사 매출액이 목표 금액을 넘기면 쿠팡이 출판사 매출의 일부를 가져가게 돼 있다. 이를테면, 1구간 500만~1천만원, 2구간 1천만~1500만원, 3구간 1500만~2천만원으로 정하고 구간마다 1.0%(1구간), 1.5%(2구간), 2.0%(3구간)로 수취율을 정하는 식이다.



ㄷ씨는 “처음에는 월 매출이 5천만원이 넘어야 매출의 2.0%를 내야 한다고 돼 있었는데, 이후 월 매출이 최대 3천만원까지 나오는 것을 파악한 쿠팡 쪽에서 기준을 2천만원으로 낮춰 계약 갱신을 요구했다”며 “결국 ‘3천만원’으로 갱신했고, 두달에 한번은 성장장려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출판사 40여곳과 소통해본 결과, 절반가량이 쿠팡에서 성장장려금을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압박은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강해진다. 출판사 대표 ㄹ씨는 “계약 초기에는 공급률 인하와 성장장려금 요구가 없었다가 매출이 늘수록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책 노출을 줄이거나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압박한다”고 했다.
다른 온라인서점에서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구매자 정보’도 쿠팡에서는 돈을 내야 볼 수 있다. 출판사는 서점별 자체 판매관리시스템(SCM)에 접속하면 도서 재고 현황, 구매자 정보(나이·성별 등)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쿠팡에서 해당 정보를 확인하려면 ‘쿠팡 애널리틱스’를 이용해야 한다. 재고를 볼 수 있는 ‘베이직’ 구독은 월 150만원, 구매자 정보를 볼 수 있는 ‘실버’ 구독은 월 600만원을 내야 한다. ㄷ씨는 “금액이 부담돼 구매자 정보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출판계에서는 쿠팡의 광고 및 반품 요구, 최장 60일에 이르는 긴 정산주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양서 발굴’ 쿠팡에 기대할 수 있을까
출판계는 무엇보다 공공재 성격이 강한 문화 상품으로서의 특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ㅁ씨는 “일반 공산품처럼 싸게 후려치려고 하면 오랜 시간 준비하고 공들여 책 한권을 완성하는 출판사 입장에선 서글플 수밖에 없다. 책은 그냥 상품이랑은 좀 다르지 않나”라고 했다.



쿠팡 누리집 도서 카테고리 갈무리


유통업계에는 고객과 접점을 만들며 함께 도서를 기획하는 출판계의 오랜 관행도 기대하기 어렵다. 기존 온라인서점 엠디(MD)들은 출판사 관계자들과 신간이 나오면 함께 회의를 연다고 한다. 출판사가 공들인 책들을 엠디가 살펴보고 어떤 책을 어떻게 노출할지 함께 논의하는 자리다. ㄷ씨는 “기존 서점과 출판사들도 협상 과정에서 실랑이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독자를 넓히고 책을 사랑한다는 신뢰관계가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겨레가 만난 출판사 관계자들은 쿠팡 엠디와 이러한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쿠팡의 독주가 지속되면 베스트셀러 위주로 도서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ㄷ씨는 “쿠팡에서 판매되는 책 현황을 보면, 다른 서점에 비해 ‘인기 도서’ 쏠림이 심하다. 의미 있는 좋은 책을 발굴하려는 노력 없이 광고와 인기순으로만 도서를 노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온라인서점의 경우 출판사의 광고가 없어도 각 서점 엠디들이 논의해 ‘좋은 책’을 주요하게 노출한다. 각 온라인서점마다 운용하는 ‘오늘의 선택’(교보문고), ‘오늘의 책’(예스24), ‘편집장의 선택’(알라딘) 등이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ㄷ씨는 이런 온라인서점의 ‘픽’으로 도움을 받은 경우다. ㄷ씨의 출판사는 지난해 장애인 권리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손익분기점을 못 넘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서 손해를 감수하고 출간한 책이었다. 그런데 걱정과 다르게 해당 책은 손익분기점을 넘긴 3쇄까지 찍을 수 있었다. 알라딘과 예스24가 메인 페이지에 이 책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ㄷ씨는 “서점은 양서를 선별해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용수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정책 담당)는 “도서는 다른 상품과 달리 정가제가 적용돼 출판사와 저자가 정한 가격을 존중하게 돼 있고, 부가가치세 면세 혜택까지 주어져 일반 공산품과는 다른 특별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며 “출판시장이 커지면 좋다는 관점에서 쿠팡이 도서 유통에 들어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적어도 최저 공급률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정산율에 대해서도 3~4년 단위 정도 장기 계약을 하는 방향으로 보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은 국내 도서산업 성장과 발전을 위해 출판업계와 직거래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상생 방안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고객들이 다양한 국내 도서들을 로켓배송으로 접하고, 국내 도서가 고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출판업계와 협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률 인하, 성장장려금, 광고 요구, 반품 시도 등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