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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만 수확 가능한 ‘부추’여름엔 잠수 일하며 소득 마련농사서 중요한 건 ‘환경 관리’철저한 준비·정책 활용 필요
“지금 삶에 대한 만족도요? 120%입니다.”

경남 고성군 구만면에서 만난 오태흥(44)씨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여유가 넘쳤다. 귀농 9년 차인 그는 현재 38동, 약 3만3057㎡가 넘는 하우스에서 부추를 재배하는 베테랑 농부다. 연 매출은 평균 4억원에 이른다. 불과 9년 전, 농사라곤 전혀 모르던 ‘부산 사나이’가 경남 고성에서 이뤄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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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에서 부추 농사를 짓는 오태흥(44)씨가 자신이 재배한 부추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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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에서 부추 농사를 짓는 오태흥(44)씨가 자신이 재배한 부추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물 전문가’, 흙을 만나다= 오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부산 태종대 인근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레 정기예금 추천 ‘물’과 친해졌다. 귀농 직전까지 그는 수상 관련 업종을 종횡무진했다. 산업 잠수사, 스쿠버 다이빙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바다 깊은 곳을 누볐다. 단순한 강사가 아니었다. 그는 강사를 가르치며 현재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의 인명구조요원 회장직도 맡고 있다. 평생 ‘물’ 전문가로 살아온 그가 ‘흙’을 만지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 전세담보대출사기 첫째 아이를 가지면서 ‘촌에서 아기를 키워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에서 결혼 생활을 하던 오 씨는 2016년 아내의 고향인 고성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아내와 장모님의 ‘권유 아닌 권유’도 한몫했다. “장모님께 ‘농사 돈 됩니까?’ 한마디 던졌는데, 아내가 ‘오빠, 농사짓고 싶어 했다면서?’라며 몰아가더라고요. (웃음)”
은행예금이자◇“딱 한 사람만”, 7동에서 38동까지=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초기 시설투자만 해도 억 단위 자금이 필요했다. 기술은 더 큰 문제였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짓는 작물이 부추였기에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농사 방식은 농가마다 달랐다.
“다들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말들이 전부 달랐습니다. 그래서 딱 한 사람만 정했습니다. ‘이 사람한테만 배워서 그대로 따라 해보자’고요.”
그는 자신보다 10년 먼저 농사를 시작한 선배 농부를 멘토로 삼았다. 하지만 멘토의 방식대로 해도 초기 병해충과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옆집 하우스와 우리 집 땅 환경이 다르니 결국에 내가 답을 찾아야 한다는 걸요.”
그는 하우스 7동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첫해 농사를 짓고 난 그의 판단은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추는 면적당 소득이 낮은 작물입니다. 이건 좀 크게 해야겠다 싶더군요.”
그는 과감하게 규모를 늘렸다. 첫해 7동에서 이듬해 14동, 그다음 해 20동, 25동으로 매년 하우스를 늘려나갔다. 9년 만에 38동까지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독특한 이력에 있었다.
◇겨울엔 부추, 여름엔 물가로, ‘N잡’= “부추는 겨울 농사입니다. 11월부터 4월까지 6개월간 수확하고 나면 여름에는 소득이 없죠. 저는 여름에 원래 하던 일을 했습니다.”
오 씨는 농한기인 여름이 되면 다시 ‘물의 전문가’로 돌아갔다. 산업 잠수 일을 하고 요트 교육 등을 하며 추가 소득을 올렸다. 이 소득은 농업 초기 자금난을 버티는 힘이자, 하우스 규모를 확장하는 재투자금이 됐다.
가격 변동에 대한 대응 방식도 달랐다. “농사를 잘 지어도 한 박스에 7~8만원 하던 부추가 1000원, 2000원까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박스 값, 운반비도 안 나오니 그냥 버리는 게 낫죠.” 오씨는 경매 출하 위주 구조에서 벗어나 거래처 고정 납품 비중을 높여 수익 변동을 줄였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농사 기술은 ‘환경 관리’다. “기후가 계속 바뀌니 매일 아침 하우스를 확인하고 그날의 온도에 맞춰 환경을 조절합니다. 아침에 개폐기를 30분 일찍 여느냐 늦게 여느냐에 따라 작물 상태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오 씨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은 ‘배움’과 ‘긍정’이다. ‘매년 자격증 하나씩 따자’는 목표로 지금껏 20개가 넘는 자격증을 땄다. 그는 “걱정이나 후회를 잘 안 하는 성격”이라며 “잘못됐으면 앞으로 잘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웃었다.
◇“농사는 혼자 짓는 것 아냐, 만족도 120%”=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우스 규모를 늘리는 대신, ‘순환 농법’을 도입할 계획이다. “연작 장애를 피하기 위해 내년엔 3동 정도 부추 대신 고구마나 감자 같은 타 작물을 심어 땅심을 회복시킬 겁니다.” 농업 분야 공부도 더 깊게 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그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철저한 준비와 정책 활용은 기본”이라면서도 두 가지를 특히 강조했다. ‘하기 나름’이라는 태도와 ‘인간 관계’다.
“결국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농사는 절대 혼자 짓는 게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야 내가 어렵거나 다쳤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관계가 정말 중요합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귀농을 택하겠냐”는 질문에 오 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네”. 도시에서의 삶보다 촌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훨씬 낫다는 그의 말에서 ‘만족도 120%’의 진심이 느껴졌다.

☞ 고성군 귀농귀촌 지원책은
농업창업자금 최대 3억 농가 현장 실습 지원도
고성군은 도시민의 농촌 정착을 돕기 위해 자금·교육·주거·영농실습 전 단계를 아우르는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다. 먼저 ‘귀농 농업창업 및 주택구입 지원사업’을 통해 초기 시설투자 부담을 덜 수 있다. 농업 창업자금은 세대당 최대 3억원, 주택 구입·신축은 최대 7500만원까지 융자 지원되며, 대출 조건은 연 2% 내외 금리,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이다.
영농 정착을 위한 현금 지원도 이뤄진다. 귀농세대 중 2인 이상 이주 가구에는 최대 1000만원, 2인 미만 가구에는 최대 600만원을 지원해 하우스 개보수, 농기계 구입 등 영농 기반 구축을 도울 수 있다.
고성군의 강점은 현장 중심 교육 시스템이다. 선도농가에서 실습하며 배우는 ‘현장실습 교육’을 운영하는데, 실습생은 월 80만원, 선도농가는 월 40만원의 수당을 지원받는다. 더불어 농업기술센터와 농촌대학 등을 통해 기초 영농기술부터 유통·가공·경영까지 단계별 전문 교육 과정도 제공된다.
정착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인 주거 문제를 완화하는 지원도 마련돼 있다. 예비 귀농인은 ‘귀농인의 집’을 이용해 월 15만원 수준의 비용으로 6개월~최대 1년까지 거주할 수 있으며, 현지 생활을 경험하며 농지와 주거지를 천천히 탐색할 수 있다.

청년층도 지원한다. 청년농업인 영농정착 지원사업을 통해 독립경영 1년 차 청년에게 월 110만원, 2년 차 100만원, 3년 차 90만원을 지원해 초기 소득 공백을 메운다. 농지·시설 임대 시 임대료 일부 지원 제도도 병행된다. 이 밖에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출산 농가도우미 지원 등 생활형 지원 정책도 운영 중이다. 고성군은 이 같은 정착 →기술 습득 →경영→확장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지원 정책을 통해, 귀농·귀촌인이 ‘실패하지 않고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박준영 기자 bk6041@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