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왼쪽)이 4일(현지시간) 84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2007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9·11 테러 후 테러와 전쟁을 이끈 ‘네오콘의 대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4세.
유족 측은 체니 전 부통령이 이날 밤 폐렴과 심장·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체니 전 부통령은 1989년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에 오른 뒤 91년 걸프전에서 ‘사막의 폭풍’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듬해 대선에서 민 주당 후보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공직을 떠났다가 2001~2009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직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체니 전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세우기 위해 그를 14번 찾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체니 전 부통령은 “외교·국방 분야를 위임한다”는 부시 전 대통령의 확답을 받고 부통령직을 수락했다. 실제로 체니 전 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사실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체니 전 부통령은 미국적 가치를 전 세계에 힘을 통해 적극 전파해야 한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시리아 등에서 테러와 전쟁을 잇따라 벌였다. 미국적 가치를 지켰다는 평가와 미국을 전쟁의 수렁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2018년 ‘바이스’란 제목의 블랙코미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라크전을 개시했지만, 왜곡되거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체니 전 부통령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며 “데이 터를 왜곡하거나 과장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41년 미 네브래스카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예일대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학업 부족으로 중퇴하고 전봇대를 타는 전기공이 됐다. 중퇴 이유에 대해 “동부 출신 엘리트 자제와 어울리느라 시간이 없어 학업에 소홀히 했다”고 회고했다. 그 러나 아내인 린 체니의 권유로 다시 학업에 정진해 와이오밍대에 입학한 후 정치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1965년 상원 인턴십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인 75년에는 34세에 백악관 비서실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78년 중간선거에서 와이오밍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88년까지 내리 6선을 했다. 공직에서 물러났을 때는 글로벌 석유개발 기업인 할리버튼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적도 있다.
체니 전 부통령은 북한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2004년 당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과 회담을 갖고 북한 핵 문제 해결과 이라크 추가 파병 등을 논의하는 등 한국과 인연도 깊다. 주요 포럼의 연사로 방한해 한반도와 북한 문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네오콘이 쇠퇴하면서 체니 전 부통령 역시 힘을 급속도로 잃었다.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도 악화했다. 같은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선언할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지지했다. 유족으로 부인 린 체니와 두 딸을 뒀다. 맏딸 리즈 체니가 정치적 후계자다.
전민구·정영교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기자 admin@gamemong.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