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부산 동래구 사직동 론볼경기장에서 부산시 선수단원들이 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부산=글·사진 이승륜 기자



“나이 들거나 몸이 불편해도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시민을 위한 복지지, 달리 뭐가 또 있겠습니까?”
지난 8일 오전 부산 동래구 사직동 론볼경기장에서는 전국 소규모 대회를 앞둔 장애인 선수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공을 굴리고 있었다. 휠체어나 지팡이를 곁에 둔 50~60대 부산 대표 선수들은 새로 단장된 경기장에 서 경기력을 점검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비와 햇볕을 그대로 맞으며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훈련하던 이곳은 전국체전과 장애인체전을 계기로 지붕이 설치되고 바닥이 개선됐다. 한 중장년 선수는 “예전엔 바닥이 울퉁불퉁해 공이 뜻대로 가지 않고 몸이 불안했는데, 지금은 경기력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이런 시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은 이제 단순히 체육 행사를 많이 여는 도시가 아니라, 엘리트·생활·장애인·비장애인·프로·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스포츠 르네상스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전국체전과 장애인체전을 치르며 부산시가 택한 방향은 “시민이 처한 현실은 달라도 공공 인프라만큼은 최고 수준으로 누리게 하겠다”는 박형준 시장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시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68 8억 원을 투입해 120개 경기장을 신설·개보수했다. 사직 론볼장은 지붕이 설치되고 폭이 넓어져 장애인과 고령층이 모두 이용하기 편해졌으며, 강서체육공원 하키장·실내체육관·사직수영장 등도 국제 규격에 맞게 개선됐다. 이들 시설은 대회 후 시민 생활체육과 청소년 교육, 장애인 체육의 거점으로 개방되고 있다.
시는 ‘집에서 15분 안에 체육시 설이 있는 도시’를 목표로 생활권 체육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415억 원을 투입해 62곳을 개보수하고, 185억 원으로 56곳을 새로 조성했거나 조성 중이다. 수영구 호암골 체육공원은 주민·학교·행정이 함께 낡은 공원을 예술과 체육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재생했고, 금정구 조리마을 체육공원은 게이트볼장·풋살장·테니스장·황톳 길을 갖춘 복합체육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생활체육 참여율은 2022년 61.6%에서 지난해 80.3%로, 공공체육시설 이용률은 19.1%에서 58.3%로 상승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시니어 세대를 위한 생활체육시설도 빠르게 늘고 있다. 부산의 파크골프장은 현재 19개소(248홀)에서 2027년 이후 46개소(573홀)로 확대된다. 화명 파크골프장은 24시간 개방돼 어르신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낙동강생태공원 파크골프장은 개장 전부터 대기줄이 생길 만큼 인기다. 테니스장은 46개소(198면)로, 내년까지 8개소를 새로 짓고 14개소를 개보수한다. 국민체육센터는 20개가 운영 중이며 9개가 추가 건립 중이다. 2027년 해운대에 문을 여는 ‘부산 반다비 체육센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통합형 시설로, 컬링장·수영장·헬스장을 갖춘다.



지난 9월 ‘세븐브릿지 투어:라이딩 인 부산’에 참가한 시민과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부산 광안대교 위를 달리고 있다. 부산시청 제공


확충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부산은 이제 ‘운동이 일상이고 축제인 도시’로 바뀌고 있다. 올해 9월 처음으로 열린 ‘세븐브릿지 투어: 라이딩 인 부산’은 광안대교·부산항대교·남항대교·을숙도대교 등 7개 해상교량과 터널을 잇는 77㎞ 구간을 달리는 국내 최초 도심 해상교량 자전거 투어였다. 3000장의 참가 티켓이 5분 만에 매진됐고,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타 지역에서 몰려왔다. 광안대교 위에서는 미식 행사가 함께 열려 시민들이 도심 한가운데서 운동과 맛있는 음식을 동시에 즐겼다. 시는 이 행사를 일본·대만 등 외국 참가자까지 참여하는 국제 자전거 축제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낙동강과 화명생태공원을 배경으로 열린 ‘슬로우 철인3종 경기 페스타’는 기록 경쟁보다 풍경과 여유를 즐기는 참가자 1200여 명이 함께했으며, 참가자들은 “낙동강이 이렇게 깨끗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테니스·파크골프·에어로빅 힙합·배구·볼링을 묶은 ‘빅(BIG)5 스포츠 페스타 in 부산’ ‘달밤에체조 부산 챌린지’, 공원형 생활체육 프로그램 등이 더해지며 부산은 ‘365일 어디선가 운동과 공연이 열리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생활체육의 확산은 엘리트 스포츠의 성과로 이어졌다. 부산은 제106회 전국체전에서 금 66개, 은 57개, 동 117개를 따내 52년 만에 종합 2위를 달성했고, 전국장애인체전에서도 사격과 세팍타크로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시는 선수 훈련비·장학금·실업팀 운영비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부산스포츠과학센터를 통해 체력 측정·부상 예방·데이터 분석 등 과학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만 700명 이상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또 60여 개 스포츠클럽과 ‘찾아가는 청소년 체육교실’ ‘주말체육학교’를 운영하며 생활체육 참여 학생이 엘리트 선수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보는 스포츠’에서도 부산은 단연 두드러진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남녀 프로농구단, 남자 프로배구단까지 4대 프로스포츠 구단을 모두 보유한 비수도권 유일 도시다. KCC 이지스는 부산 연고 첫해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27년 만의 환호를 안겼고, BNK 썸 여자농구단도 창단 첫 우승을 거뒀다. 올해 창단된 OK저축은행 읏맨은 강서체육공원을 새 홈구장으로 삼으며 경남권 최초의 남자 프로배구단 시대를 열었다. 지난 9일 열린 홈 개막전에서는 4270명의 관중이 몰려 배구 열기를 보여줬고, 지역 상권 활성화 효과도 기대된다. 시는 경기장 환경을 개선하고 프로구단과 협력해 유소년 교실, 팬 페스티벌, 지역 브랜드 협업 행사 등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열린 ‘부산 스포츠 굿즈 페스타’에서는 프로구단 굿즈와 지역 신발·패션 브랜드를 결합한 공동 마케팅으로 현장 판매와 수출 판로 개척까지 시도했다.
시는 스포츠를 행정 성과나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지역 문화와 시민의 삶을 바꾸는 지속 가능한 유산으로 남기려 한다. 이를 위해 생활체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이색 대회와 프로스포츠 흥행으로 도시 활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이런 기반 위에서 생활체육이 엘리트를 키우고, 프로스포츠의 열기가 다시 시민 참여로 이어지는 ‘부산형 스포츠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이 시의 목표다. 시는 전국체전과 전국장애인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달 세계도핑방지기구(WADA) 총회, 내년 5월 12~15일 전국장애학생체전, 같은 해 5월 23~26일 전국소년체전, 2027년 4월 전국생활체육대축전, 같은 해 6월 제7회 전국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을 차질 없이 개최해 ‘공정·참여·포용’의 스포츠 철학을 국내외에 확산시킬 계획이다. 박 시장은 “스포츠가 시민의 일상 속에서 도시의 활력을 이끌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며 “프로에서 생활체육까지, 장애인부터 청소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기는 스포츠 도시 부산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이승륜 기자 기자 admin@no1reel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