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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러시아의 전통을 계승한 위대한 작곡가로 여겨진다. [사진 사회평론]







미국에 바다이야기룰 공장을 건설하러 간 우리 인력들이 쇠사슬에 묶여 범죄자처럼 구금된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미국 측의 의도된 공포 마케팅이라고 봐야 할까. 아메리칸 드림, 이민자의 천국은 더이상 없다는 메시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쇠퇴하는 미국이 되살아날지 의문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이민이야말로 미국을 탄생시킨 출발점이었고 미국을 발전시킨 위 백경게임랜드 대한 과학자와 예술가 대부분은 이민자들이었으니까.

20세기 초. 유럽 최고의 음악가들이 파시즘과 사회주의 혁명을 피해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로 인해 미국 음악계는 세계 음악의 중심으로 급부상한다. 현대음악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3인, 스트라빈스키·쇤베르크·버르토크가 모두 미국행을 택했고 이때부터 미국이 새로운 현 모바일야마토 대음악의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민 온 작곡가 중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다. 1918년 말 10월 혁명을 피해 뉴욕으로 올 때 그는 여비조차 빌려야 할 정도로 가난했으나 첫 투어를 마친 이듬해 라흐마니노프는 이미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유럽 음악가 망명하며 미국이 현대음악 주도 성공의 열매는 달았다 야마토게임 . 라흐마니노프는 전속 하인, 요리사, 운전기사를 두었고 고급 정장을 맞춰 입고 최신형 자동차를 소유하는 등 상류층의 삶을 만끽했다. 그는 첨단 기술의 혜택까지 맘껏 누렸다. 1919년 축음기 발명가인 토마스 에디슨이 직접 세운 에디슨 레코드사에서 최첨단 수직 녹음 방식의 이른바 다이아몬드 디스크로 녹음한 음반을 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 후에는 RCA 골드몽사이트 레코드에서 20년 넘게 수많은 음반을 녹음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해 미키 마우스가 그의 ‘프렐류드 c#단조’를 직접 연주하는 명장면도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 그가 당대 최고 실력의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그는 198㎝나 되는 큰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강렬한 힘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옥타브 위의 5도 음까지 짚어낼 수 있는 그의 긴 손을 거치면 아무리 복잡한 화음도 명료해졌으며 모든 선율은 수정처럼 맑게 울렸다. 라흐마니노프는 화려하고 정밀한 기교뿐 아니라 유연성까지 탁월해 악보대로 연주하고 있는데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기가 넘쳐 종종 즉흥 연주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전해진다.
라흐마니노프의 연주에서 특히 놀라운 점은 그가 무엇을 연주하든지 그 작품을 누구보다 돋보이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음악에 클라이맥스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치밀하고 신중한 계산을 통해 파편 같은 모자이크조차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살려냈다. 그의 이런 구성 능력은 자신이 직접 작곡을 하면서 터득된 것임이 분명하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 성공했으나 그가 더 소망했던 것은 작곡가로 우뚝 서는 것이었으며 살인적인 연주 일정을 소화해야 할 때마다 작곡할 시간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라흐마니노프가 음악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데는 그가 가진 음악적 재능뿐 아니라 몰락한 가정형편도 한몫했다. 귀족 출신으로 친가와 외가 모두 군 장교 출신이 많았던 그는 사관학교로 진학해야 했으나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고 집을 나가버린 바람에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12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 사랑하던 두 누이를 디프테리아와 악성 빈혈로 잃었고 그 충격으로 무단결석과 낙제를 거듭하며 퇴학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다.









모스크바 음악원 전경. 라흐마니노프는 이곳에서 루빈스타인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사진 사회평론]







위기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구한 건 사촌 형 알렉산더 질로티였다.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질로티는 그를 자신이 교수로 있던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전학시켰고 자신의 은사인 니콜라이 즈베레프 교수에게 보내 그의 집에서 숙식하며 음악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즈베레프의 다른 제자들과 같은 방을 쓰면서 매일 3시간씩 교대로 피아노 연습을 한 덕분에 음악원에서 루빈스타인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 와중에 작곡을 하고 싶었던 라흐마니노프는 즈베레프에게 작곡할 개인 시간과 공간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즈베레프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에게 작곡은 시간 낭비라며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다.

꿈은 장애를 만나면 강한 열망으로 변한다. 작곡가의 꿈을 버릴 수 없었던 라흐마니노프는 즈베레프 교수를 떠나 고모의 집으로 옮긴 후 피아노와 작곡 모두를 열심히 공부한 끝에 졸업 시험을 학우들보다 1년 일찍 치르면서도 최고의 성적으로 통과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졸업사정위원회 위원이었던 즈베레프 교수는 금시계를 선물하며, 자기를 거역했더라도 스스로 꿈을 이뤄낸 자랑스러운 제자의 앞날을 축복했다. 졸업과 함께 공식적으로 “자유 예술가”라는 칭호를 얻은 그는 전문 피아니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한편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프렐류드 C#단조’를 위시한 매력적인 소품들을 출판했다. 1893년 작곡한 오페라 ‘알레코’의 볼쇼이 극장 초연에 참석한 그는 자신의 우상이자 롤 모델이었던 차이코프스키로부터 극찬을 받는 등 작곡가로서도 화려한 출발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인생에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역경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1895년 그가 작곡한 첫 대곡인 ‘교향곡 1번’이 영광스럽게도 알렉산드르 벨랴예프가 기획한 러시아 교향곡 연주회에 채택되어 글라주노프의 지휘로 초연되었으나 기대와 달리 결과는 참담했다. 유명한 독설가였던 러시아 5인조의 세자르 쿠이가 “이집트에 닥친 일곱 가지 재앙”을 표현한 것 같다고 혹평할 정도로 평단의 반응도 싸늘했다. 라흐마니노프는 평소 알코올 중독이 심했던 글라주노프가 너무 성의 없이 지휘했기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사실 그는 자기 작품이 가진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의 좌절이 얼마나 컸는지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3년 이상 아무것도 작곡하지 못했다.
절망은 깊었으나 주변의 응원과 격려는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그를 지탱해 주었다. 아마추어 음악가이기도 한 심리치료사 달의 상담 치료 덕에 의욕을 되찾아 1901년 대단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숙고의 시간이 길었던 덕분일까, 광활한 선율과 화려한 화성도 매력적이지만 미묘한 색채와 전체를 아우르는 특유의 서정성이 압권이다. 달에게 헌정된 이 곡의 초연은 열렬한 호평을 받았으며 이 곡으로 라흐마니노프는 글린카 상을 수상하고 500루블의 상금을 받으며 화려한 부활을 세상에 알렸다. 이듬해 사촌 누이인 나탈리아 사티나와 결혼해 장모가 된 고모로부터 결혼 선물로 이바노프카 영지의 집도 받았고 차례로 두 딸도 낳았다.

에디슨이 세운 레코드사에서 최첨단 녹음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묘사한 그림. 1905년 1월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국군이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사건으로, 체제 붕괴와 러시아 혁명에 일조했다. [사진 사회평론]







모든 일이 잘 풀려가는 듯했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러시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명성을 떨치고 있던 라흐마니노프는 1905년 이른바 ‘피의 일요일’로 촉발된 러시아 내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자국내에서의 음악 활동에 점점 더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독일 드레스덴에 정착했을 때만 해도 종종 러시아 집을 오가며 지냈지만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의 격동 속에서 약탈이 만연하고 라흐마니노프가 아끼던 이바노프카의 집이 파괴되자 크게 절망했고, 러시아를 완전히 떠나게 된다.

망명자의 삶은 언제나 절박하다. 먹고사는 것도 힘들지만 뿌리를 떠난 인간이 느끼는 존재적 불안이 있기 때문이리라. 미국에서의 성공이 클수록 그는 러시아를 더 그리워했다. 오죽하면 뉴욕의 아파트를 러시아 이바노프카에서 살던 집 분위기로 꾸미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러시아인만 고용했을까. 그는 사후에도 스크랴빈·타네예프·체홉이 묻혀있는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결국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망명의 땅 미국, 뉴욕 주 발할라의 켄시코 묘지에 묻히기는 했지만.
연주가보다 오롯이 작곡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라흐마니노프. 자기 나라에서 소박한 행복을 꿈꾸었으나 망명자로 살아야 했던 인생. 그렇게 삶은 그를 두 번 배신한다. 그럼에도 망명지에서 연주가로 대성공을 거뒀으니 그저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자기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면 그것대로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행복과 위로를 주었으니까.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5년부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음악과 페미니즘’‘독재자와 음악’‘대중음악의 역사’ 등을 주제로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했으며 최근에는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시리즈를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