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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 기자]
▲ 까치밥 걸린 구림마을 풍경. 주홍빛 단내를 머금고 있다.
ⓒ 이돈삼
전남 영암 구림마을. 주홍빛 단내 머금은 감이 나무에 걸려 있다. 이른바 '까치밥'이다. 땅 위엔 나뭇잎이 바다이야기게임 수북하다. 겨울로 가는 골목이다. 그 길에서 이순신 장군이 비석으로 서 있다. 비석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가 새겨져 있다.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라는 해석이 붙어 있다.
오른쪽에는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의 한문이 빼곡하다. 한문은 이순신 장군이 친구인 사헌부지평 현덕 야마토게임방법 승(1555~1627)에게 1593년 7월 17일 보낸 편지글이다. 왼편에는 이순신 초상화와 함께 이순신과 영암 이야기가 적혀 있다.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진을 한산도로 옮겨 치고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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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에 나오는 '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를 강조한 비석이다. 지난 6일과 9일, 구림마을을 찾았다.
이순신 편지 글을 새긴 비석
바다이야기부활
▲ '약무호남 시무국가' 비석. 현덕승이 살던 옛집 앞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바다이야기슬롯
▲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언급한 이순신 장군의 친필 편지. 사헌부지평 현덕승에게 1593년 7월 17일 보낸 글이다.
ⓒ 이돈삼
비석은 현덕승이 살던 옛집 앞에 세워져 있다. 옛집은 죽림정이 있는 연주현씨(延州玄氏) 종갓집을 가리킨다. 죽림정에 이순신의 친필 편지가 복사본으로 전시돼 있다.
"제 선조이신 현덕승, 현건 할아버지께서 이순신 장군한테 일곱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옛 어른께서 편지 원본을 덕수이씨 문중 어른께 줬다고 합니다. 원본은 지금 현충사에 보관돼 있어요.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그 편지를 제가 복사해 왔습니다."
현삼식 어르신의 말이다. 현 어르신은 같은 자리에서 400년 넘게 살아온 연주현씨 사직공파 종손이다.
▲ 죽림정 앞에 선 현삼식 어르신. 연주현씨 사직공파 종손이다.
ⓒ 이돈삼
죽림정(竹林亭)은 죽림 현징(1629~1702)이 지었다. 현건의 손자 현징은 왕인박사 배움터인 문산재를 복원하고 학당을 열어 인재를 키웠다. 숙부 현덕승을 향한 현징의 마음이 죽림칠현을 연상케 한다고 '죽림정'으로 이름 붙여졌다. 죽림정엔 영암으로 유배된 문곡 김수항과 우암 송시열의 흔적도 남아있다.
죽림정 주변엔 오랜 풍상을 이겨낸 동백나무와 벽오동나무가 있다. 숙종이 하사했다는 회화나무의 후계목인 어린 회화나무도 있다. 입구에는 팽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대문인 것처럼 서 있다. 팽나무와 정자를 대숲이 연결하고 있다.
▲ 구림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구림천. 400년 넘게 대를 이어 온 조종수 가옥이 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 국사암과 국암사 주변 풍경. 마을이 도선국사, 최지몽 등 옛사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죽림정과 이순신 편지글 비석 앞으로 구림천이 흐른다. 월출산에서 발원한 구림천은 마을을 휘돌아 흐른다. 하천에는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민물새우가 많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속한다. 죽림정 외에 회사정, 대동계사, 국사암, 죽정서원이 구림리에 있다. 구림도요지와 영암도기박물관,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도 이 마을에 속한다.
▲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회사정. 정자는 마을 대동계 집회장소로 쓰였다.
ⓒ 이돈삼
▲ 회사정. 마을 대동계 집회장소로 쓰였다. 마을 대소사는 물론 문화행사, 손님맞이 장소로도 쓰였다.
ⓒ 이돈삼
회사정(會社亭)은 마을 대동계 집회 장소였다. 마을 대소사는 물론 문화행사, 손님맞이 장소로도 쓰였다. 구림대동계는 1500년대 중후반 시작된 동계(洞契)다. 1609년부터 1743년까지 작성된 대동계 문서가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돼 있다.
회사정은 1646년 처음 세워졌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고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85년 복원했다. 불효 등 마을 규약을 어긴 이들을 묶어 혼낸 돌도 남아있다. 회사정은 3·1운동 때 독립만세 기치를 든 곳이기도 하다. 만세운동 기념탑이 회사정 앞에 서 있다.
회사정은 주민들의 민주광장이고, 항쟁의 장소였다. 구림마을 역사의 산증인이다. 회사정은 화순 물염정, 담양 식영정, 곡성 함허정, 광주 호가정, 나주 영모정, 장흥 부춘정, 완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8대 정자로 꼽힌다.
▲ 국사암. 도선국사 이야기를 품은 바위다. 마을의 지명 유래와도 엮인다.
ⓒ 이돈삼
▲ 3·1만세운동 기념탑. 회사정 앞 영암도기박물관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죽림정 인근에 도선암도 있다. 도선국사(827~898) 탄생 설화와 엮이는 바위다. 냇물에 떠내려온 푸른 오이를 먹은 최씨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 이를 부끄럽게 여긴 집안에서 숲속 바위 아래에 아기를 내버렸는데, 비둘기 떼가 아기를 돌봤다. 그 아기가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라는 얘기다. 마을 이름 구림(鳩林)의 지명 유래이기도 하다. 숲속 바위는 국사암(國師巖)이다.
도선은 13살 때 월암사로 출가했다. 20살 때 월출산 수남사지에 도갑사를 창건했다. 국사암 옆에 국암서원도 있다. 서원 강학공간인 덕성당에 오세창이 쓴 '조천덕성(朝川德星)'이 편액으로 걸려 있다. 오세창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국암사(國巖祠)는 고려 왕건의 책사였던 민휴공 최지몽(907~987)을 배향하고 있다. 최지몽은 왕건으로부터 닭과 오리가 한 둥지에 있는 꿈 이야기를 듣고 '삼한 통일'로 해몽했다. 왕건을 도와 고려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 복원된 상대포. 왕인박사가 일본에 가려고 배를 탄 포구다.
ⓒ 이돈삼
일본에 천자문과 백제문화를 전한 왕인박사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왕인은 8살 때 월출산 문산재(文山齋)에서 유학과 경전을 익혔다. 왕인은 405년 응신천황 초청으로 일본으로 가 태자의 스승이 됐다. 일본 아스카문화의 초석을 닦았다.
왕인박사가 일본에 가려고 배를 탄 상대포(上臺浦)가 복원돼 있다. 상대포는 당시 중국, 일본과의 교역로였다. 대양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외국 선박도 많이 드나들었다. 최치원도 당나라로 유학 갈 때 여기서 배를 탔다고 전한다. 오래전 이뤄진 간척 탓에 상대포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 모습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가마터부터 미술관까지, 참 멋진 마을
▲ 영암도기박물관. 녹갈색과 흑갈색 유약을 입힌 구림도기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 국사암과 국암사로 가는 길. 돌담과 어우러진 한옥이 발걸음을 가붓하게 해준다.
ⓒ 이돈삼
구림마을은 1200여 년 전 유약을 칠한 도자기(施釉陶器)를 처음 생산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청자 이전에 만들어진 시유도기는 고려청자 탄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시유도기는 장보고 선단의 교역 물품이기도 했다. 가마터가 마을에 남아있다. 녹갈색과 흑갈색 유약을 입힌 구림도기의 역사를 영암도기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400년 넘게 대를 이어온 창녕조씨 조종수 가옥에서도 전통 사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안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석봉 한호가 글을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썬 곳도 이 마을이라고 전한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이 스승을 따라 내려와 죽림정사에 머물며 글씨를 익혔다. 대동계사 옆 '육우당(六友堂)' 현판 글씨가 그의 필체다.
일본에서 큰 부자가 된 영암 출신 재일교포 하정웅(1939~)이 기증한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도 있다. 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여러 가지 조형물도 볼만하다. 고샅과 고택, 정자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돌담도 다소곳하다. 그 길을 따라 하늘거리는 발걸음이 가붓하다. 옛사람의 숨결과 바람의 노래도 향기롭다. 참 멋진 마을이다.
▲ 구림천변의 늦가을 풍경. 서구림과 고산마을을 이어주는 고산교 주변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까치밥 걸린 구림마을 풍경. 주홍빛 단내를 머금고 있다.
ⓒ 이돈삼
전남 영암 구림마을. 주홍빛 단내 머금은 감이 나무에 걸려 있다. 이른바 '까치밥'이다. 땅 위엔 나뭇잎이 바다이야기게임 수북하다. 겨울로 가는 골목이다. 그 길에서 이순신 장군이 비석으로 서 있다. 비석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가 새겨져 있다.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라는 해석이 붙어 있다.
오른쪽에는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의 한문이 빼곡하다. 한문은 이순신 장군이 친구인 사헌부지평 현덕 야마토게임방법 승(1555~1627)에게 1593년 7월 17일 보낸 편지글이다. 왼편에는 이순신 초상화와 함께 이순신과 영암 이야기가 적혀 있다.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진을 한산도로 옮겨 치고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입니다.'
릴게임온라인
편지글에 나오는 '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를 강조한 비석이다. 지난 6일과 9일, 구림마을을 찾았다.
이순신 편지 글을 새긴 비석
바다이야기부활
▲ '약무호남 시무국가' 비석. 현덕승이 살던 옛집 앞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바다이야기슬롯
▲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언급한 이순신 장군의 친필 편지. 사헌부지평 현덕승에게 1593년 7월 17일 보낸 글이다.
ⓒ 이돈삼
비석은 현덕승이 살던 옛집 앞에 세워져 있다. 옛집은 죽림정이 있는 연주현씨(延州玄氏) 종갓집을 가리킨다. 죽림정에 이순신의 친필 편지가 복사본으로 전시돼 있다.
"제 선조이신 현덕승, 현건 할아버지께서 이순신 장군한테 일곱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옛 어른께서 편지 원본을 덕수이씨 문중 어른께 줬다고 합니다. 원본은 지금 현충사에 보관돼 있어요.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그 편지를 제가 복사해 왔습니다."
현삼식 어르신의 말이다. 현 어르신은 같은 자리에서 400년 넘게 살아온 연주현씨 사직공파 종손이다.
▲ 죽림정 앞에 선 현삼식 어르신. 연주현씨 사직공파 종손이다.
ⓒ 이돈삼
죽림정(竹林亭)은 죽림 현징(1629~1702)이 지었다. 현건의 손자 현징은 왕인박사 배움터인 문산재를 복원하고 학당을 열어 인재를 키웠다. 숙부 현덕승을 향한 현징의 마음이 죽림칠현을 연상케 한다고 '죽림정'으로 이름 붙여졌다. 죽림정엔 영암으로 유배된 문곡 김수항과 우암 송시열의 흔적도 남아있다.
죽림정 주변엔 오랜 풍상을 이겨낸 동백나무와 벽오동나무가 있다. 숙종이 하사했다는 회화나무의 후계목인 어린 회화나무도 있다. 입구에는 팽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대문인 것처럼 서 있다. 팽나무와 정자를 대숲이 연결하고 있다.
▲ 구림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구림천. 400년 넘게 대를 이어 온 조종수 가옥이 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 국사암과 국암사 주변 풍경. 마을이 도선국사, 최지몽 등 옛사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죽림정과 이순신 편지글 비석 앞으로 구림천이 흐른다. 월출산에서 발원한 구림천은 마을을 휘돌아 흐른다. 하천에는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민물새우가 많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속한다. 죽림정 외에 회사정, 대동계사, 국사암, 죽정서원이 구림리에 있다. 구림도요지와 영암도기박물관,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도 이 마을에 속한다.
▲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회사정. 정자는 마을 대동계 집회장소로 쓰였다.
ⓒ 이돈삼
▲ 회사정. 마을 대동계 집회장소로 쓰였다. 마을 대소사는 물론 문화행사, 손님맞이 장소로도 쓰였다.
ⓒ 이돈삼
회사정(會社亭)은 마을 대동계 집회 장소였다. 마을 대소사는 물론 문화행사, 손님맞이 장소로도 쓰였다. 구림대동계는 1500년대 중후반 시작된 동계(洞契)다. 1609년부터 1743년까지 작성된 대동계 문서가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돼 있다.
회사정은 1646년 처음 세워졌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고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85년 복원했다. 불효 등 마을 규약을 어긴 이들을 묶어 혼낸 돌도 남아있다. 회사정은 3·1운동 때 독립만세 기치를 든 곳이기도 하다. 만세운동 기념탑이 회사정 앞에 서 있다.
회사정은 주민들의 민주광장이고, 항쟁의 장소였다. 구림마을 역사의 산증인이다. 회사정은 화순 물염정, 담양 식영정, 곡성 함허정, 광주 호가정, 나주 영모정, 장흥 부춘정, 완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8대 정자로 꼽힌다.
▲ 국사암. 도선국사 이야기를 품은 바위다. 마을의 지명 유래와도 엮인다.
ⓒ 이돈삼
▲ 3·1만세운동 기념탑. 회사정 앞 영암도기박물관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죽림정 인근에 도선암도 있다. 도선국사(827~898) 탄생 설화와 엮이는 바위다. 냇물에 떠내려온 푸른 오이를 먹은 최씨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 이를 부끄럽게 여긴 집안에서 숲속 바위 아래에 아기를 내버렸는데, 비둘기 떼가 아기를 돌봤다. 그 아기가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라는 얘기다. 마을 이름 구림(鳩林)의 지명 유래이기도 하다. 숲속 바위는 국사암(國師巖)이다.
도선은 13살 때 월암사로 출가했다. 20살 때 월출산 수남사지에 도갑사를 창건했다. 국사암 옆에 국암서원도 있다. 서원 강학공간인 덕성당에 오세창이 쓴 '조천덕성(朝川德星)'이 편액으로 걸려 있다. 오세창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국암사(國巖祠)는 고려 왕건의 책사였던 민휴공 최지몽(907~987)을 배향하고 있다. 최지몽은 왕건으로부터 닭과 오리가 한 둥지에 있는 꿈 이야기를 듣고 '삼한 통일'로 해몽했다. 왕건을 도와 고려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 복원된 상대포. 왕인박사가 일본에 가려고 배를 탄 포구다.
ⓒ 이돈삼
일본에 천자문과 백제문화를 전한 왕인박사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왕인은 8살 때 월출산 문산재(文山齋)에서 유학과 경전을 익혔다. 왕인은 405년 응신천황 초청으로 일본으로 가 태자의 스승이 됐다. 일본 아스카문화의 초석을 닦았다.
왕인박사가 일본에 가려고 배를 탄 상대포(上臺浦)가 복원돼 있다. 상대포는 당시 중국, 일본과의 교역로였다. 대양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외국 선박도 많이 드나들었다. 최치원도 당나라로 유학 갈 때 여기서 배를 탔다고 전한다. 오래전 이뤄진 간척 탓에 상대포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 모습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가마터부터 미술관까지, 참 멋진 마을
▲ 영암도기박물관. 녹갈색과 흑갈색 유약을 입힌 구림도기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 국사암과 국암사로 가는 길. 돌담과 어우러진 한옥이 발걸음을 가붓하게 해준다.
ⓒ 이돈삼
구림마을은 1200여 년 전 유약을 칠한 도자기(施釉陶器)를 처음 생산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청자 이전에 만들어진 시유도기는 고려청자 탄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시유도기는 장보고 선단의 교역 물품이기도 했다. 가마터가 마을에 남아있다. 녹갈색과 흑갈색 유약을 입힌 구림도기의 역사를 영암도기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400년 넘게 대를 이어온 창녕조씨 조종수 가옥에서도 전통 사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안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석봉 한호가 글을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썬 곳도 이 마을이라고 전한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이 스승을 따라 내려와 죽림정사에 머물며 글씨를 익혔다. 대동계사 옆 '육우당(六友堂)' 현판 글씨가 그의 필체다.
일본에서 큰 부자가 된 영암 출신 재일교포 하정웅(1939~)이 기증한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도 있다. 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여러 가지 조형물도 볼만하다. 고샅과 고택, 정자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돌담도 다소곳하다. 그 길을 따라 하늘거리는 발걸음이 가붓하다. 옛사람의 숨결과 바람의 노래도 향기롭다. 참 멋진 마을이다.
▲ 구림천변의 늦가을 풍경. 서구림과 고산마을을 이어주는 고산교 주변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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