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들]―충북 충주 편



엄씨 할머니 집 마당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마을 ‘아가씨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온 동네에 김장하기가 순식간에 끝났다. 추위가 온다고 하자 다들 벼락처럼 무와 배추를 뽑았다. “무는 아직 잘고 배추는 속이 덜 찼네!” 하면서도 뽑아서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했다. 김장을 끝내고도 밭에 무가 몇 개 남아 있다. 탐난다. 오가면서 커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꼭 내 자식, 내 것 같다. 겨울 무는 밭에서 나는 인삼이라는데 하나 뽑아서 생으로 먹 온라인골드몽 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경로당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네.” 마침 무밭 주인 할머니가 올라온다. “김장은 맛있게 잘 하셨어요?” 하고 물으니 “몰라, 안 먹어봤어” 하고 대답한다. “그럼 뭐 하러 고생스럽게 김장하셨어요?” 하니 “아들 딸 며느리 주려고 했지”.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뿌듯한 표정이다. 남은 무를 몇 개 뽑아도 되는지 물었 릴박스 더니 싹 다 뽑아가라고 한다.
“며칠 바짝 추웠으니 무가 달달할 것이여.” 무는 자라는 것이 흥미롭다. 같은 뿌리식물인 고구마나 감자는 땅속에 박혀 있어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없다. 파봐야 안다. 그런데 무는 매일 쑥쑥 땅을 밀면서 올라와 자라는 걸 보여준다. 서리를 맞았는데도 무청이 시퍼렇다. 거친 무청을 잡고 뽑으니 쑥 빠진다. “나 손오공릴게임예시 는 조선의 무다!” 하는 것처럼 늠름하다.
“어디 갔나 했더니 모두 저기 다 모였네.” 남편이 없는 엄씨 할머니 집 마당에 유모차 넉 대가 서 있다. “저건 현이 엄마 차, 욱이 엄마 차….” 동네 사람들은 척 보면 누구 유모차인지 다 안다. 방문을 여니 할머니들이 이불 속에 손과 발을 넣고 둘러앉아 있다. 나를 보더니 새댁이 왔다고 좋아 사이다쿨 한다. 이 동네에서 60대는 파란 아가씨다. 귀한 호두주도 한잔 내놓는다.
무에 붙은 흙을 씻어 잘라보니 한껏 물을 머금고 있다. 한 조각 썰어 먹으니 아삭아삭 소리가 난다. “와, 달다. 이 무로 뭘 해 먹으면 제일 맛있을까요?” 내 질문에 동네 여인네들은 할 말이 많다. 조물조물 생채가 제일 맛있고, 무밥도 맛있고, 무조림도 맛있고, 릴게임사이트추천 무동치미도 맛있고, 뭇국도 맛있고, 무말랭이도 맛있고, 무떡도 맛있고, 뭐를 해도 다 맛있다고.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이빨이 안 좋아서 씹을 수가 없어.”
젊은 시절 땅을 파서 김장독을 묻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기다란 장대로 땅굴 속에 묻어둔 무를 꺼내 반으로 잘라 놋숟가락으로 무를 긁어 그 즙을 지독한 감기에 걸린 어린 아들의 입에 넣어주었던 이야기도 나온다. “그럼 무를 긁어서 한번 먹어볼까요?” 했더니 다들 이불 속에서 손을 빼기 싫다고, 귀찮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내가 무를 쓱쓱 긁으니 마음이 달라진다. 무즙이 얼굴에 튀자 간지럼 타듯 키득키득 웃는다.
“한 숟가락만 먹어보자.” 한 숟가락 가득 흥건하게 흐르는 흰 즙을 먹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달다 달아!” “어찌 이리 시원할꼬.” “허 참, 맛나네!” 생기가 나는지 눈이 반짝이고 목소리는 명랑해졌다. “아이고나 벌써 해가 떨어졌네. 아들 밥하러 가야겠다.” 다들 나와서 각자의 자가용에 앉는다.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아가씨들?” 했더니 깔깔깔 웃어댄다. 무즙이 준 마법에 걸려 다들 이 마을에 시집올 때 그 나이 열일곱이 되어버린 것 같다.
글·사진 신이현 작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세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