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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reelnara.info
지난 11일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15~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판인 알도 마누치오 전을 찾은 한문학자 부산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이 전시장 입구에 걸린 마누치오 초상화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관람을 마친 두 사람은 근대 출판의 기틀을 마련한 마누치오에 관한 이야기부터 조선 시대와 지금의 출판문화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인천 송도의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 손오공게임 난달 28일 개막해 내년 1월25일까지 이어지는 기획특별전 ‘천천히 서둘러라: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이 그것이다. 알도 마누치오는 15세기 말∼16세기 초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알디네 인쇄소를 운영하며 중요한 서적들을 출판한 이다. 16세기 초 베네치아에서는 유럽에서 출판된 서적의 절반이 인쇄되어 ‘책 공장’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였는 야마토무료게임 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출판계의 미켈란젤로’라 불린 알도 마누치오다. 그가 낸 책들은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토대를 이루었다. 그는 또 기울어진 활자 이탤릭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을 비롯해 활자와 구두점, 쪽 번호, 책 판형 등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근대적 기틀을 마련한 ‘책의 혁명가’로 일컬어진다. 이탈리아 로마 국립 릴게임추천 중앙도서관과 베네치아 국립마르차나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마련된 이 전시에는 알도 마누치오와 그의 아들 파올로 마누치오, 손자인 알도 마누치오 2세까지 이어지며 한 세기 남짓 존속한 알디네 출판사가 남긴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품 53점이 나와 있다.
내년 1월25일까지 바다신2릴게임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열리는 ‘알도 마누치오’ 전시 전경. 김영원 기자
지난 11일 관람객들이 ‘알도 마누치오’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정면 오른쪽에 보이는 그림은 조르조 바사리의 작품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1543 골드몽게임 ~1544)으로, 왼손에 책을 들고 있는 단테를 비롯해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이 묘사되어 있다. 김영원 기자
알도 마누치오라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설명을 곁들이면 어떨까.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2022년에 제정한 한국출판편집자상의 제1회 대상을 받은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기획실장은 수상을 계기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존경하고 닮고 싶은 편집자로 두 사람을 꼽았다. 독일을 대표하는 학술·교양 출판사 주어캄프의 제2대 대표를 역임한 지크프리트 운젤트(1924∼2002)와 알도 마누치오가 그 둘이었다. 마침 그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알도 마누치오의 라틴어 이름을 제목 삼은 평전 ‘알두스 마누티우스’(마틴 로리 지음, 심정훈 옮김)가 나와 있기도 하다. 한겨레는 이승우 실장과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를 도슨트(전문 해설사) 삼아 전시를 둘러보았다. 강 교수는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숙종조 인쇄 출판과 서적문화’ 같은 책을 통해 조선시대 책과 출판에 관한 연구와 저술을 이어오고 있는 학자여서 유럽과 우리의 출판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아, 이 책이 여기 있네요! 더구나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소장품이라니, 놀라운걸요.”
지난 11일 오후 ‘알도 마누치오’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하 박물관) 1층에 들어선 강명관 교수가 전시장 초입에 놓인 책 한권을 가리키며 감탄했다. 1493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출간된 삽화본 책 ‘뉘른베르크 연대기’였다. 알브레히트 뒤러를 포함한 뉘른베르크 유파의 거장들에 의해 제작되었고 특히 뒤러가 일부 삽화 제작에 직접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뉘른베르크와 로마, 베네치아 등의 전경이 컬러 그림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1476년 베네치아에서 니콜라 장송이 출간한 대(大)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이탈리아어판과 함께 박물관 쪽이 자랑하는 15세기 유럽 출판물이다.
알도 마누치오 전시에 나온 ‘라틴어 문법’. 마누치오 자신이 집필해 1493년에 펴낸 책의 초판본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김영원 기자
마누치오의 손길이 닿은 책은 네번째 전시품 ‘라틴어 문법’부터였다. 학자이기도 했던 마누치오가 집필해 1493년에 간행한 이 책은 국립마르차나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 유일본인데다 마누치오 자신이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직접 남긴 것으로 보이는 수정 기록이 들어 있어 더욱 귀한 느낌을 준다. ‘라틴어 문법’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강 교수가 “이런 책은 몇부 정도 찍었고 누가 구매했나?”라고 묻자 동행한 이정연 박물관 학예사가 “보통 1천부에서 2천부 정도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승우 실장이 덧붙여 설명했다.
“저희가 낸 책 ‘알두스 마누티우스’를 보니까 당시 헝가리에서 영국, 스페인까지 유럽의 거의 모든 왕족과 귀족, 지식인들은 베네치아의 알도 마누치오가 무슨 책을 만들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책을 주문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유럽 전역에 폭넓은 지식인 독자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던 거죠.”
“알도 마누치오가 참 중요한 사람이었군요”라고 강 교수가 말을 받자 이 실장이 덧붙여 설명했다.
“알도 마누치오가 활동하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유럽의 출판문화를 돌이켜 보면 절묘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20~30년 뒤에 베네치아에서 마누치오를 필두로 한 출판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마누치오가 죽은 지 이태 뒤인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인쇄해 교회 정문에 내건 것을 비롯해 종교개혁 운동과 출판을 결합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100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기에 유럽의 근대 출판문화가 자리 잡았고 그게 지금까지 600년간 이어지고 있는 서양 문명의 토대를 이룬 것이죠.”
강 교수가 같은 시기 유럽과 달랐던 조선의 출판문화 현황을 알려주었다.
“조선의 출판 시스템은 거의 90%를 국가가 장악했어요. 게다가 조선 건국에서 임진왜란까지 200년 동안 만든 책들이 전쟁으로 일거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죠. 잿더미에서 다시 출발해 숙종조에 와서 비로소 출판 시스템이 복구되었지만, 그래 봤자 국가 주도라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인쇄·출판 역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민간 영역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폴리치아노 전집’과 ‘아솔로 사람들’에 이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에라스뮈스의 ‘격언집’이 관람객을 맞았다. 에라스뮈스는 알도 마누치오와 교분을 쌓고 알디네 인쇄소를 들락거리며 자신의 저작 상당수를 이곳에서 출간했다. 1500년 파리에서 출간한 초판 ‘격언집’에 818개의 격언이 수록되어 있었던 데 비해 1508년 알디네에서 낸 새 판본에는 3260개의 격언이 해설과 함께 들어 있고, 특히 알디네 인쇄소 사훈이자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 “천천히 서둘러라”도 그에 포함되어 있다. ‘폴리치아노 전집’과 ‘격언집’ 등에는 로마자 알파벳뿐만 아니라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사용되었는데, “솜씨 좋은 금속 활자공을 영입해서 시장성이 불분명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활자를 만든 점에서 알도 마누치오는 벤처 사업가 같은 면모도 있었다”고 이 실장은 평가했다.
알도 마누치오의 인쇄소에서 1499년에 펴낸 수수께끼의 소설 ‘폴리필로의 꿈’. 김영원 기자
그리스어 어근을 엮어 만든 신조어를 제목 삼은 ‘폴리필로의 꿈’(1499)은 172점의 목판 삽화가 수록된 수수께끼 같은 소설로, 르네상스 시대 가장 아름다운 책이자 최초의 포르노 삽화 수록 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 장치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 작품의 언어인데, 책 본문은 이탈리아어(토스카나어), 라틴어, 그리스어, 조어(造語)가 서로 맞물리는 문장들로 어지럽다. 오승미 박물관 연구원은 도록 해설에서 “이 책의 줄거리는 사랑이 아니라 언어의 자기도취”라는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며 “결국 진짜 주인공은 폴리필로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50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 “언어가 만들어내는 해석적 긴장과 몽환성”으로 가득한 “난삽한 언어 유희”를 구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알두스 마누티우스 l 마틴 로리 지음, 심정훈 옮김, 길(2020)
알도 마누치오는 에우리피데스 비극과 플라톤 전집, 단테의 ‘신곡’, 헤로도토스의 ‘역사’,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고전들을 라틴어와 그리스어, 당대 이탈리아어 등으로 출간했으며, 휴대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옥타보 판형을 고안해 독서 대중화를 가능하게 했고, 세미콜론과 어퍼스트로피, 쪽 번호 등을 도입해 출판 형식을 혁신했다. 그는 이탤릭체 활자를 처음 사용했고 로마자 서체를 개발했다. 마누치오가 활자공 프란체스코 그리포를 시켜 만든 휴머니스트 로만 서체는 프랑스의 서체 디자이너 클로드 가라몽에 의해 저 유명한 가라몽 서체로 발전했고, 우아하고 가독성 높은 이 서체는 스티브 잡스가 초기 애플 컴퓨터에 도입한 애플 가라몽 서체의 토대가 되었다. 마누치오에서 가라몽을 거쳐 잡스로 이어지는 ‘창조와 혁신의 디엔에이’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도 마누치오 사후에 출간되었지만, 스테파노 캄파뇰로 로마 국립중앙도서관장이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두권의 책”으로 꼽은 피에트로 벰보의 ‘(이탈리아어) 산문집’(1525)과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궁정론’(1528) 등을 거쳐 알도 마누치오 2세가 교황의 요청으로 인쇄한 가톨릭교회 표준 성경 ‘불가타 성경’(1593)까지 전시는 이어졌다. 연신 “이 사람 참 대단하네!” 감탄하며 전시를 둘러보던 강 교수는 박물관 지하 1층 상설전시실에 놓인 구텐베르크 인쇄기 복원품을 보며 “왜 우리는 이런 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 금속활자가 서양보다 빨랐다고는 하지만 그 활자로 무얼 했느냐가 중요한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인쇄기가 서양의 중세를 끝냈던 것과 달리 조선의 금속활자는 오히려 중세를 연장시킨 셈”이라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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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이 지난 11일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도 마누치오’ 전 관람을 마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영원 기자
“알도 마누치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가 마누치오를 독일로 데려가려고 거듭해서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당시 출판인의 위상이 놀랄 만큼 높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에 비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출판인과 편집자의 위상은 어떤지 돌아보게 됩니다.”(이 실장)
“출판·편집자의 위상이 높아지자면 전문화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출판인에 대한 경제적 처우가 개선돼야 하겠죠. 모든 문화의 저변을 이루는 게 출판인데, 역할을 제대로 하자면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공공 도서관의 양서 구입과 정책적 지원 등에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강 교수)
500여년 전 베네치아 출판인의 자취를 살펴본 두 전문가의 결론은 당대 한국 출판문화에 대한 아쉬움으로 귀결되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인천 송도의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 손오공게임 난달 28일 개막해 내년 1월25일까지 이어지는 기획특별전 ‘천천히 서둘러라: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이 그것이다. 알도 마누치오는 15세기 말∼16세기 초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알디네 인쇄소를 운영하며 중요한 서적들을 출판한 이다. 16세기 초 베네치아에서는 유럽에서 출판된 서적의 절반이 인쇄되어 ‘책 공장’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였는 야마토무료게임 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출판계의 미켈란젤로’라 불린 알도 마누치오다. 그가 낸 책들은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토대를 이루었다. 그는 또 기울어진 활자 이탤릭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을 비롯해 활자와 구두점, 쪽 번호, 책 판형 등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근대적 기틀을 마련한 ‘책의 혁명가’로 일컬어진다. 이탈리아 로마 국립 릴게임추천 중앙도서관과 베네치아 국립마르차나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마련된 이 전시에는 알도 마누치오와 그의 아들 파올로 마누치오, 손자인 알도 마누치오 2세까지 이어지며 한 세기 남짓 존속한 알디네 출판사가 남긴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품 53점이 나와 있다.
내년 1월25일까지 바다신2릴게임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열리는 ‘알도 마누치오’ 전시 전경. 김영원 기자
지난 11일 관람객들이 ‘알도 마누치오’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정면 오른쪽에 보이는 그림은 조르조 바사리의 작품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1543 골드몽게임 ~1544)으로, 왼손에 책을 들고 있는 단테를 비롯해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이 묘사되어 있다. 김영원 기자
알도 마누치오라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설명을 곁들이면 어떨까.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2022년에 제정한 한국출판편집자상의 제1회 대상을 받은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기획실장은 수상을 계기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존경하고 닮고 싶은 편집자로 두 사람을 꼽았다. 독일을 대표하는 학술·교양 출판사 주어캄프의 제2대 대표를 역임한 지크프리트 운젤트(1924∼2002)와 알도 마누치오가 그 둘이었다. 마침 그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알도 마누치오의 라틴어 이름을 제목 삼은 평전 ‘알두스 마누티우스’(마틴 로리 지음, 심정훈 옮김)가 나와 있기도 하다. 한겨레는 이승우 실장과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를 도슨트(전문 해설사) 삼아 전시를 둘러보았다. 강 교수는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숙종조 인쇄 출판과 서적문화’ 같은 책을 통해 조선시대 책과 출판에 관한 연구와 저술을 이어오고 있는 학자여서 유럽과 우리의 출판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아, 이 책이 여기 있네요! 더구나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소장품이라니, 놀라운걸요.”
지난 11일 오후 ‘알도 마누치오’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하 박물관) 1층에 들어선 강명관 교수가 전시장 초입에 놓인 책 한권을 가리키며 감탄했다. 1493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출간된 삽화본 책 ‘뉘른베르크 연대기’였다. 알브레히트 뒤러를 포함한 뉘른베르크 유파의 거장들에 의해 제작되었고 특히 뒤러가 일부 삽화 제작에 직접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뉘른베르크와 로마, 베네치아 등의 전경이 컬러 그림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1476년 베네치아에서 니콜라 장송이 출간한 대(大)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이탈리아어판과 함께 박물관 쪽이 자랑하는 15세기 유럽 출판물이다.
알도 마누치오 전시에 나온 ‘라틴어 문법’. 마누치오 자신이 집필해 1493년에 펴낸 책의 초판본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김영원 기자
마누치오의 손길이 닿은 책은 네번째 전시품 ‘라틴어 문법’부터였다. 학자이기도 했던 마누치오가 집필해 1493년에 간행한 이 책은 국립마르차나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 유일본인데다 마누치오 자신이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직접 남긴 것으로 보이는 수정 기록이 들어 있어 더욱 귀한 느낌을 준다. ‘라틴어 문법’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강 교수가 “이런 책은 몇부 정도 찍었고 누가 구매했나?”라고 묻자 동행한 이정연 박물관 학예사가 “보통 1천부에서 2천부 정도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승우 실장이 덧붙여 설명했다.
“저희가 낸 책 ‘알두스 마누티우스’를 보니까 당시 헝가리에서 영국, 스페인까지 유럽의 거의 모든 왕족과 귀족, 지식인들은 베네치아의 알도 마누치오가 무슨 책을 만들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책을 주문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유럽 전역에 폭넓은 지식인 독자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던 거죠.”
“알도 마누치오가 참 중요한 사람이었군요”라고 강 교수가 말을 받자 이 실장이 덧붙여 설명했다.
“알도 마누치오가 활동하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유럽의 출판문화를 돌이켜 보면 절묘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20~30년 뒤에 베네치아에서 마누치오를 필두로 한 출판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마누치오가 죽은 지 이태 뒤인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인쇄해 교회 정문에 내건 것을 비롯해 종교개혁 운동과 출판을 결합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100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기에 유럽의 근대 출판문화가 자리 잡았고 그게 지금까지 600년간 이어지고 있는 서양 문명의 토대를 이룬 것이죠.”
강 교수가 같은 시기 유럽과 달랐던 조선의 출판문화 현황을 알려주었다.
“조선의 출판 시스템은 거의 90%를 국가가 장악했어요. 게다가 조선 건국에서 임진왜란까지 200년 동안 만든 책들이 전쟁으로 일거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죠. 잿더미에서 다시 출발해 숙종조에 와서 비로소 출판 시스템이 복구되었지만, 그래 봤자 국가 주도라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인쇄·출판 역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민간 영역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폴리치아노 전집’과 ‘아솔로 사람들’에 이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에라스뮈스의 ‘격언집’이 관람객을 맞았다. 에라스뮈스는 알도 마누치오와 교분을 쌓고 알디네 인쇄소를 들락거리며 자신의 저작 상당수를 이곳에서 출간했다. 1500년 파리에서 출간한 초판 ‘격언집’에 818개의 격언이 수록되어 있었던 데 비해 1508년 알디네에서 낸 새 판본에는 3260개의 격언이 해설과 함께 들어 있고, 특히 알디네 인쇄소 사훈이자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 “천천히 서둘러라”도 그에 포함되어 있다. ‘폴리치아노 전집’과 ‘격언집’ 등에는 로마자 알파벳뿐만 아니라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사용되었는데, “솜씨 좋은 금속 활자공을 영입해서 시장성이 불분명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활자를 만든 점에서 알도 마누치오는 벤처 사업가 같은 면모도 있었다”고 이 실장은 평가했다.
알도 마누치오의 인쇄소에서 1499년에 펴낸 수수께끼의 소설 ‘폴리필로의 꿈’. 김영원 기자
그리스어 어근을 엮어 만든 신조어를 제목 삼은 ‘폴리필로의 꿈’(1499)은 172점의 목판 삽화가 수록된 수수께끼 같은 소설로, 르네상스 시대 가장 아름다운 책이자 최초의 포르노 삽화 수록 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 장치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 작품의 언어인데, 책 본문은 이탈리아어(토스카나어), 라틴어, 그리스어, 조어(造語)가 서로 맞물리는 문장들로 어지럽다. 오승미 박물관 연구원은 도록 해설에서 “이 책의 줄거리는 사랑이 아니라 언어의 자기도취”라는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며 “결국 진짜 주인공은 폴리필로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50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 “언어가 만들어내는 해석적 긴장과 몽환성”으로 가득한 “난삽한 언어 유희”를 구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알두스 마누티우스 l 마틴 로리 지음, 심정훈 옮김, 길(2020)
알도 마누치오는 에우리피데스 비극과 플라톤 전집, 단테의 ‘신곡’, 헤로도토스의 ‘역사’,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고전들을 라틴어와 그리스어, 당대 이탈리아어 등으로 출간했으며, 휴대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옥타보 판형을 고안해 독서 대중화를 가능하게 했고, 세미콜론과 어퍼스트로피, 쪽 번호 등을 도입해 출판 형식을 혁신했다. 그는 이탤릭체 활자를 처음 사용했고 로마자 서체를 개발했다. 마누치오가 활자공 프란체스코 그리포를 시켜 만든 휴머니스트 로만 서체는 프랑스의 서체 디자이너 클로드 가라몽에 의해 저 유명한 가라몽 서체로 발전했고, 우아하고 가독성 높은 이 서체는 스티브 잡스가 초기 애플 컴퓨터에 도입한 애플 가라몽 서체의 토대가 되었다. 마누치오에서 가라몽을 거쳐 잡스로 이어지는 ‘창조와 혁신의 디엔에이’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도 마누치오 사후에 출간되었지만, 스테파노 캄파뇰로 로마 국립중앙도서관장이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두권의 책”으로 꼽은 피에트로 벰보의 ‘(이탈리아어) 산문집’(1525)과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궁정론’(1528) 등을 거쳐 알도 마누치오 2세가 교황의 요청으로 인쇄한 가톨릭교회 표준 성경 ‘불가타 성경’(1593)까지 전시는 이어졌다. 연신 “이 사람 참 대단하네!” 감탄하며 전시를 둘러보던 강 교수는 박물관 지하 1층 상설전시실에 놓인 구텐베르크 인쇄기 복원품을 보며 “왜 우리는 이런 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 금속활자가 서양보다 빨랐다고는 하지만 그 활자로 무얼 했느냐가 중요한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인쇄기가 서양의 중세를 끝냈던 것과 달리 조선의 금속활자는 오히려 중세를 연장시킨 셈”이라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수메르 회계 점토판(기원전 2039~기원전 2037)과 홍수 신화의 아카드어 판본이라 할 원형 배 점토판(기원전 2000~기원전 1600), 구데아의 점토 못(기원전 2141~기원전 2122) 원본들에서부터 로제타석과 함무라비법전 복제품 등 상설전시실의 전시품을 꼼꼼하게 둘러본 두 사람은 박물관 2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관람 소감을 나누었다.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이 지난 11일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도 마누치오’ 전 관람을 마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영원 기자
“알도 마누치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가 마누치오를 독일로 데려가려고 거듭해서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당시 출판인의 위상이 놀랄 만큼 높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에 비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출판인과 편집자의 위상은 어떤지 돌아보게 됩니다.”(이 실장)
“출판·편집자의 위상이 높아지자면 전문화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출판인에 대한 경제적 처우가 개선돼야 하겠죠. 모든 문화의 저변을 이루는 게 출판인데, 역할을 제대로 하자면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공공 도서관의 양서 구입과 정책적 지원 등에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강 교수)
500여년 전 베네치아 출판인의 자취를 살펴본 두 전문가의 결론은 당대 한국 출판문화에 대한 아쉬움으로 귀결되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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