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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잡지를 즐겨 읽는 저는, 얼마 전 재미있는 자료를 봤습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 내 <디지털 아카이브> 탭이 있습니다. 들어가보면, <가정의 벗>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볼 수 있습니다. 1972년 1~12월까지 1년치가 나와 있는데 지금봐도 구성이 다양합니다. 그냥 넘길 기사가 하나도 없더군요. 잡지의 부제목은 이렇습니다.

'우리 가정의 근대화를 위한 잡지'










우체국예금 ▲ <가정의 벗> 1972년 4월호. 표지를 보면 머리모양과 복장, 표지 폰트 등 여러 방면에서 당시의 감수성이 물씬 느껴진다. 경직돼 있는 아이의 표정이 재미있다.


ⓒ 인구보건복지협회, 김관식




스파크s 연비 1970년대면 제 부모님이 20대로서 한참 청춘을 재미있게 보내셨을 시기입니다. 그때를 상상하며 잡지를 넘기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20대의 부모님과 40대의 제가 우연히 스쳐 지나칠 것만 같은 환상적인 기분마저 듭니다. 본문과 달리 표지의 세로읽기도 이색적입니다.

당시의 편집부 분위기도 아파트담보대출갈아타기 금세 상상이 됩니다. 필진이 일일이 손으로 글을 써서 우편으로 편집부에 보내면, 빨간색 사인펜으로 교정교열을 거쳐 필진의 확인을 한 번 거칩니다.
그리고 이 당시는 손으로 직접 조판을 짜고 활자로 인쇄하던 시기였습니다. 인쇄판에 때가 껴서도 안 됐고, 비슷비슷한 한자가 잘못 들어가서도 안 됐습니다. 상상을 해보세요. 가령, 큰 대(大)자 가능한가 를 실수로 개 견(犬)으로 잘못 넣고 책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가령 대통령(大統領)이라는 한자라면 대책이 없겠지요. 지금처럼 낱장갈이(그 페이지만 뜯어서 새로 인쇄한 종이를 대신 끼워넣는 것)나 스티커를 붙일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가정의 건강은 엄마의 손으로'
잡지를 보면, 먼저 광고부터 눈에 띕니다. 광고는 1000만원 예금 당시의 사회상과 경제, 물가 등을 가장 가깝게 살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당시 '조미료와 맛소금' 광고도 신기하고, '가족계획 상담지도' 광고, 하물며 '피임제' 광고까지 실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잡지(가정의 벗)가 추구하는 콘셉트에 부합하는 광고 위주로 게재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잡지는 당시 대한가족협회가 발행하는 일종의 협회지 개념입니다.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잡지가 아니기 때문에 광고에도 제약이 있을 것이고, 공익에 부합하는 주제와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겠죠. 매달 4만부(당시는 휴대폰과 컴퓨터가 없어 볼 것이 귀했고, TV 보급이 적었던 시절이었습니다.)를 찍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판권에 구독회원을 모집하며 곁들인 한 마디가 획기적입니다.

"가난과 불합리한 가정의 생활 방식과 희망이 없는 불안만으로 가득했던 것이 우리나라 농촌의 지난 날이었습니다. <가정의 벗>은 내일을 바라볼 수 없었던 농촌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려 탄생했습니다."


판권을 보고 나니, 일종의 농촌 계몽을 위한 잡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용을 펼쳐보면 지금 봐도 손색 없을 정도로 알토란 같은 내용이 많습니다. 1970년대 당시 사회적 슬로건이었던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는 뜻이 담긴 기사가 많습니다. 1970년대면 다소 보수적이어서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정관수술'이나 '남존여비사상을 깨자' '공처가가 됩니다' 등의 기사도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다보면 결혼 후 한 가정 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편중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령 '가정의 건강은 엄마의 손으로' '위인의 어머니' '연재소설-시어머니' 등 여성보다는 한 가정을 지탱하는 어머니로서의 이야기가 많고, 그것이 곧 가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유일한 길이자 행복처럼 여겨지게 합니다.










▲  엄마의 정신을 살찌게 합시다라는 특집 내용이 '시부모를 공경하는 며느리가 됩시다'이다. 지금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는 이런 생각이 팽배했다.


ⓒ 인구보건복지협회, 김관식












▲  제목만 읽어도 엄마의 정신을 살찌우는 게 아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기사지만 당시 사회는 여자보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 인구보건복지협회, 김관식




'여성'보다 지어미, 엄마, 며느리 단어가 더 눈에 띄다

제가 더 놀란 것은 특집 페이지입니다. 주제가 '엄마의 정신을 살찌게 합시다'인데, 내용은 '시부모를 공경하는 며느리의 자세' '남편을 섬기는 지어미의 부덕'이라니요. 요즘 같아서는 이런 글이 나왔다가는 어디 코빼기나 비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때는 그런 부분이 가정을 지탱하는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이었고, 그것을 곧 여성의 행복과 숙명으로 직결시켰던 시대였습니다. 바로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서 말이죠.

당시는 신문과 잡지를 흔히 접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을 테니, 이렇게 협회에서 발행하는 무가지는 빠르게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전문가나 정책관계자가 잡지 지면을 통해 기고하는 내용을 보다보면 자연스레 생각도 기울어졌을 겁니다.










▲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려는 취지가 지금으로 보면 다소 세게 반영된 것 같지만, 당시는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문화가 더 강했던 시기였다.


ⓒ 인구보건복지협회, 김관식




물론, 남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보여주는 기사도 있습니다. 위 내용을 보면 1972년 2월 24일 오후 7시 명동에서 부부동반 가족 모임이 있었습니다. 함께 어울리며 어느 가족의 남편이 공처가인지 발표와 게임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내이자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느라 혼자만의 외출이나 여가를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이 시간에 대한 감회는 남달랐을지도 모릅니다.

1970년대는 사회적 일자리가 많이 부족했고, 그 나마 일자리도 남성 중심으로 편중돼 있었습니다. 즉, 가정에서의 남녀 간 분업이 확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고, 아내는 대부분 가정에서 가사일을 도맡으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림하는 형태였습니다.

변화가 일기 시작한 1970년대, 그리고 이태영 여사










▲  가족법 개정운동을 하고 있는 이태영 여사


ⓒ 한국가정법률사무소




그러다, 이태영 여사(1914~1998,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워 1973년 범여성 가족법개정촉진위원회가 구성, 가족법 개정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때 여성에 대한 불평등(민법 등)과 사회 진출의 기회, 가정폭력 상담 해결 등에 직접 나서며 사회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합니다. 유교적 관습에도 앞서서 저항했던 이도 바로 이태영 여사였습니다. 이태영 여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잡지와 신문에 기고하거나 포스터를 그려 알리는 등 매체를 적극 이용했습니다.

이처럼 잡지는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모아 깊이 있게 전달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참고한 것처럼 소중한 아카이브 역할을 합니다. 1970년대 발행한 잡지를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접하면서 당시 사회상과 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며, 미디어의 역할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새롭게 깨닫는 기회가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어머니가 당시 잡지를 지금 보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이게 언제적 이야기냐? 세월 빠르구나. 하긴, 엄마는 니들 커가는 거 보며 살았지. 모든 부모가 그럴 거다. 자식 잘 되는 게 큰 기쁨이고."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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