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능 저하, 레비트라로 조기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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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5-11-16 10:50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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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능 저하, 레비트라로 조기 대응
성기능 저하, 조기 대응이 핵심이다
성기능 저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문제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빈도가 증가하지만, 이는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성기능 저하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중요한 신호일 수 있으며, 조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자존감과 결혼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성기능 문제를 겪고 있는 남성들이 많은데, 그들 중 일부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문제를 숨기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기능 저하는 조기 발견과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기능 저하의 원인
성기능 저하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주로 심리적 요인, 호르몬 변화, 혈관 건강에 관련된 문제들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심리적 요인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감 등은 성기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성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더욱 심리적인 문제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내에 정신적 안정을 되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호르몬의 변화
나이가 들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하게 됩니다. 이는 성욕 감소와 발기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체중 증가와 복부 비만도 호르몬 불균형을 유발하여 성기능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혈관 건강
성기능은 혈액순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의 질병은 혈액 순환에 악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발기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환들이 있다면 성기능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기능 저하, 방치하지 말고 조기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
성기능 문제는 단순히 성적인 부분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발기력이 떨어지면 자신감이 감소하고, 이는 결국 심리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남성의 경우 성적인 만족도가 떨어지면 부부 관계에 금이 갈 수 있습니다. 성기능 저하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부부 간의 감정적 거리감이 커지고, 이는 결국 결혼 생활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기능 저하는 종종 기타 건강 문제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발기력 저하는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기능 저하가 나타나면, 이를 단순히 성적인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비트라, 성기능 저하의 해결책
성기능 저하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레비트라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레비트라는 PDE5 억제제로, 성적 자극이 있을 때 발기력 향상을 도와주는 약물입니다. 성기능 저하로 고민하는 남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레비트라는 빠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레비트라의 주요 장점
빠른 효과
레비트라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며, 효과는 4~5시간 정도 지속됩니다. 이는 급하게 성적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매우 유용하며, 자연스러운 발기를 유도합니다.
식사의 영향 최소화
다른 발기부전 약물들처럼 레비트라는 식사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즉, 식사를 한 후에도 효과적으로 성기능을 회복할 수 있어 생활에 큰 제약을 주지 않습니다.
부작용이 적음
레비트라는 대체로 부작용이 적고, 사용자가 원하는 때에 발기력을 개선할 수 있는 약물입니다. 하지만 약물을 사용하기 전에 전문가와 상담을 거쳐 본인의 건강 상태에 맞는 용량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용량 옵션
레비트라는 5mg, 10mg, 20mg 등 다양한 용량 옵션이 있어, 개인의 상태와 필요에 맞춰 적절한 용량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발기력 회복에 최적화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용 방법
레비트라는 성관계 약 1시간 전에 복용하며,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합니다. 이 약은 전문가의 처방을 통해 사용할 수 있으며, 복용 전에는 반드시 건강 상태와 병력 등을 고려한 상담이 필요합니다.
성기능 저하, 치료가 아닌 예방이 중요
성기능 저하는 치료보다는 예방이 더 중요합니다. 성기능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점은
균형 잡힌 식사
과일, 채소, 곡물 등을 중심으로 한 식사는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발기력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기름진 음식이나 과도한 알코올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기적인 운동
운동은 심혈관 건강을 개선하고, 체중 관리에도 중요합니다. 특히 유산소 운동은 성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스트레스 관리
명상이나 심호흡을 통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것이 발기력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충분한 수면
수면은 호르몬 분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매일 7~8시간의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발기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론성기능 저하, 조기 대응이 핵심이다
성기능 저하는 단지 성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남성의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레비트라는 빠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성기능 문제를 해결하려면 약물과 함께 생활 습관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성기능 저하가 걱정된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레비트라와 같은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아 자신감을 회복하세요.
성기능 저하 문제, 지금 바로 레비트라로 조기 대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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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no1reelsite.com
편집자주
함께 도전해 세상의 편견을 지우고 변화를 이끈 대중문화 단짝들 인터뷰.
KBS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 15년 동안 호흡을 맞춘 방송인 김혜영(왼쪽)과 이헌희 PD. "'아내가 (김혜영) 언니가 잘 이끌어줄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인터뷰에 낯선 이 PD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아침마당'의 두 대들보가 최근 서울 여의도 KBS 마당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시몬 기자
야마토게임하기 가수 임영웅, 박서진 그리고 배우 강하늘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 출신이다. 20대 때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군고구마를 팔던 임영웅은 이곳에서 노래하며 시청자들에 가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하늘은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고등학생 때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경제적 형편 탓에 따로 떨어져 산다는 어머니에게 안부를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전했다. '아침마당'은 이렇게 절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전국 이야기 마당'이었다. 그렇게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나누려 편 '마당'이 지난달 1만 회를 맞았다. 1991년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34년째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군고구마를 팔며 가수의 꿈을 키웠던 온라인릴게임 '청년 임영웅'의 모습. 그는 '아침마당' 수요일 코너 '도전! 꿈의무대'에 출연해 이름을 시청자에 알리기 시작했다. KBS 영상 캡처
강하늘(왼쪽)이 아버지와 함께 '아침마당'에서 노래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모습이다. KBS 영 게임몰 상 캡처
"공감 능력 없으면 방송하면 안 되죠"
이 장수 프로그램의 대들보는 매주 수요일에 전파를 타는 '도전! 꿈의 무대'다. 전국의 무명 가수들이 이 마당의 주인공. '도전! 꿈의 무대'에서 2017년 첫 방송부터 함께 한 방송인 김혜영 릴게임사이트추천 (63)은 가수로 완성되지 않은 '미생'들에 꿈을 좇다 겪은 상처와 실패를 끊임없이 고백하게 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흉터도 망설임 없이 들췄다. 온몸으로 듣는 경청의 자세 그리고 진심 어린 공감이 그의 무기였다.
"가끔가다 직업을 얕잡아 보고 쓰레기 툭 버리며 '치우라'고 해 아빠가 걱정도 되지만, 빨리 커서 아빠처럼 멋진 환경 미화원이 되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눈물을 쏟은 무명 가수 송상중씨를 보며 김혜영은 이렇게 말했다. "열세 살 아이가 아빠의 감정을 세세하게 읽고 아빠의 직업을 따라 하겠다는 건 그만큼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송상중씨. 그의 아들은 "아빠처럼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전! 꿈의 무대' 출연 모습. KBS 영상 캡처
'아침마당' 1만회 특집에서 김혜영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출연자의 사연을 듣고 위로를 건네고 있다. KBS 영상 캡처
이런 김혜영의 마음을 마당 밖에서 비추는 이가 있다. 이헌희(60), '도전! 꿈의 무대'를 기획한 외주제작 PD다. 두 사람은 2010년부터 '아침마당'에서 '신 부부열전'으로 시작해 '도전! 꿈의 무대'까지 15년 동안 일촉즉발의 생방송 현장을 지켜왔다. 누구나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게 두 사람이 함께 연 여러 마당의 공통점이었다.
괜히 '환상의 콤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오랜 생존의 비결로 "경청의 힘"을 똑같이 꼽았다. 이 PD는 무명 가수들에 '오은영 박사'로 통한다. 인생 상담 요청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 후에도 힘들어하는 무명 가수들이 있으면 이 PD는 청계산으로 '등산 번개'를 친다. 같이 산 오르며 땀 빼고 내려와 막걸리 한잔하며 고민을 들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아침 마당' 밖에서 이뤄지는 경청의 애프터서비스(AS)다.
"방송일 하는 사람에 제일 중요한 덕목이 공감 능력이라 생각해요. 시청자와 공감해야 하는 게 일인데 그걸 못하는 사람들은 방송하면 안 되죠." 이 PD의 말이다. 두 사람을 최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이 PD는 김혜영을 "누나"라 불렀다. 끈끈하면서도 격의 없는 인연이었다.
KBS '아침마당'에서 '도전! 꿈의 무대'를 제작하고 있는 이헌희(오른쪽) PD의 말을 김혜영이 웃으며 듣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절실하십니까?" 출연자에 묻는 이유
-스태프들 얘기 들어보니, 출연자 섭외할 때 '절실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서요.
이: 네(웃음). 절실함에 대해 얘기하려면 기획 계기부터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2017년 11월 첫 방송 전 6개월 동안 이 코너를 준비했는데 기획할 때부터 '절실함'이란 키워드로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여름 지나 가을 낙엽 질 때쯤 '무명 가수들의 삶을 다뤄보자'고 방향을 잡았고요. 무명 가수들, 삶도 무대도 진짜 절실한 사람들이거든요. 업계 추산으로 1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무명 가수들의 절실함을 보여주면 시청자들도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지 않을까 싶었어요. 무명 가수들에 응원도 해주면서요. 절실함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무게라고 생각해요. 절실함이 큰 사람일수록 그가 지닌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믿고요. 절실함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닥쳤을 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도 하죠.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 꿈에 닿을 수 있도록 우리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다리가 바로 절실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도전! 꿈의 무대'도 절실한 무대이길 바랐어요.
트로트 가수 김다나가 '도전! 꿈의 무대'에 출연해 오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오빠는 교통사고로 지체장애를 겪고 있다. KBS 영상 캡처
"그 분 치아 제가" 시청자도 나섰다
-8년 동안 봤던 무대 중 가장 절실해 보였던 출연자는 누구였나요?
이: 김다나씨요. 그 친구 사연은 정말 가슴이 저렸어요. 고등학생 때 부모님 사업이 망한 뒤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더라고요. 그 이후 어머니도 5년 만에 만나고요. 그런데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 중이셨고, 우여곡절 끝에 만난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셨어요. 오빠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지체장애와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요. 다나가 지원서에 '내가 쓰러지면 가족이 무너진다'고 썼더라고요.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섭외 준비 차 그 친구를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듣고 그 내용 중 일부를 방송 대본에 옮기는 데 정리하면서 많이 울었거든요. 다나가 방송에 나왔을 때 오빠도 같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너무 어렵게 살고 고생해서 치아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웃을 때도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고요. 그 방송을 본 시청자분 중에 치과를 운영하시던 분이 KBS로 연락해 왔어요. '그 오빠 분 치아 치료해 주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다나 오빠가 무상으로 틀니를 했어요.
김: 다나씨 오빠가 방송에 나와 동생 이름 적힌 명찰을 다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어요. 다나씨한테 가끔 안부를 묻는데, 오빠가 이제 좀 살이 쪘다더라고요. 음식을 편히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 무대에 출연한 무명 가수들이 이 PD를 '아버지' 혹은 '형'이라고 불러요. 기억에 남는 출연자는 '도전! 꿈의 무대' 첫 5승 가수인 박서진이요. 파마한 머리에 빨간색 재킷을 입고 장구를 치는 데 정말 잘하는 거예요. 그땐 좀 통통했는데 장구를 치면서 점프하는데 놀라웠죠. 그 점프가 제겐 절실함으로 보였거든요. 몸 안 좋던 어머니 쾌차와 아버지가 일하는 배에서 자신의 노래가 라디오로 나오는 게 소원이라는 말도 기억나고요. 수줍음이 많아 말할 때도 고개 숙이고 땅 보며 얘기했던 친구였는데 이젠 다른 예능에 나올 땐 말도 잘하고, 그런 모습이 막 뿌듯하더라고요.
이: 의리 있고 변하지 않는 친구예요, 서진이가. '도전! 꿈의 무대' 큰 일 있을 때마다 와서 도와주고요.
트로트 가수 박서진이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17년 '도전! 꿈의 무대' 출연 모습. KBS 영상 캡처
임영웅이 '도전! 꿈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17년 11월 모습이다. KBS 영상 캡처
군고구마 장사하던 임영웅과의 인연
-'무명 임영웅'에겐 어떤 절실함이 보였나요?
이: 출연에 사연이 있어요. 출연자가 펑크를 낸 거예요. 집안일 때문에 나올 수가 없다고요. 당장 다음 주 수요일에 방송해야 하는데 전주 금요일인가 연락이 왔죠. 급하게 출연자를 다시 찾는데 그 친구가 임영웅이었어요. 유튜브에서 그 친구를 봤고요. 신인인데 노래를 참 안정적으로 부르더라고요. 영상 보고 '이 친구는 될 거 같다' 싶었죠. 그래서 급하게 수소문해 임영웅의 연락처를 받고 섭외를 하게 된 거죠. 임영웅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혼자 아들을 키웠어요. 할머니께서 '딸이 고생을 많이 해서 우리 손자 잘돼야 한다'고 했던 말씀이 기억나요. 처음엔 '도전! 꿈의 무대' 5승에 실패했다가 패자부활전을 통해 다시 기회를 얻었죠. 패자부활전 나오기 전에 임영웅이 (서울) 합정동 쪽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어요. 12월 한겨울이었는데 전화를 하니 이 친구가 "예!"라고 다시 도전할 의사를 밝히는데 목소리에서 정말 열정이 묻어나는 거예요. 그 절실함으로 우승(5승)했죠. 지금 생각하면 인연이 되려고 그렇게 만난 게 아닌가 싶어요.
김: '미스터트롯'에서 우승해 임영웅이 스타가 된 뒤에 김영옥 선생님이랑 같이 한 종편 프로그램 촬영 차 임영웅 공연하는 데 찾아간 적이 있어요. 김 선생님이 임영웅을 참 좋아하는데 알지 못하니 긴장된다며 같이 가자고 하셔서요. 대기실에 갔더니 그 친구가 달려와 저를 안아주더라고요. 제가 '아침마당' 때 그 친구를 방송하기 전에 용기 내라고 안아줬는데, 그걸 기억하는 거죠. '변하지 않았구나, 이 친구' 싶었죠. 옛 얘기 하다 보니, 박서진이 임영웅 군고구마 장사하는 데 찾아갔던 것도 기억나네요. 둘 우정이 돈독했죠.
김혜영은 집에 화장대가 없다. TV 앞 선반 작은 상자에 로션 등 서너 가지 화장품만 놓고 쓴다. 그런 그는 인터뷰에도 색조 화장을 하지 않고 왔다. 평소 그의 모습이다. 박시몬 기자
김혜영이 출연자들 안아주는 이유
-출연자 나오면 다 그렇게 안아주세요?
김: 이 PD가 절실함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면, 전 그렇게 절실한 사람들에 '너는 할 수 있다' 힘 불어넣어 주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방송 전 무명 가수들 손잡고 말 한마디라도 더 해서 (분위기) 부드럽게 해 주고요. 그래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분들 있으면 안아주기도 하고요. 무명 가수들에겐 이 무대에서 100%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제 역량을 발휘하려면 긴장 속에서도 그 사람이 편안해야 하거든요.
-김혜영씨가 절실한 출연자들 공감을 참 잘해준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이: 촬영 전 무명 가수들 누나가 안아준다고 했는데 그게 결국 공감의 표현이잖아요.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다가가는 거고요. 그렇게 진심으로 방송해 준다는 게 고마워요, 누나한텐 늘. 저 방송일 33년 했거든요? 억지로 공감하면 결국 티가 나요. 시청자 입장에선 사기당한 거 같죠. '아침마당'에서 15년을 같이 방송하며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대본을 쓸 때 기대는 게 있어요. 출연자들이 부모 얘기할 때 누나도 어머니 돌아가신 뒤 치매를 앓고 계시던 아버지를 가족과 함께 돌봤던 경험이 있고, 직업 군인으로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부모와 자식 간의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거든요.
-장수 프로그램에도 부침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KBS에서 제작진 바뀌면서 김혜영씨도 수요일('도전! 꿈의 무대')에서 다른 요일로 옮겨 함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걸 고사하신 걸로 알아요.
김: (KBS에선) 제가 다른 요일 코너에 들어가면 더 방송을 잘 살려줄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전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코너가 바로 '도전! 꿈의 무대'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말을 잘하는 편은 아녜요. 말하기보다 듣는 게 익숙하고요. 그래서 전 제가 공감을 더 잘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 다른 분들은 촬영할 때 종종 모니터를 보잖아요? 전 안 봐요. 카메라를 아예 신경 안 써요. 그걸 의식하는 순간 '아, 찍는다'란 생각에 제가 연기할 거 같아서요. 그래서 제 옆에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한테 몰두하죠. 그런 모습에 시청자나 청취자분들이 '공감을 잘해준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PD만큼 방송인으로 제 특성을 아는 사람도 없거든요. 나를 잘 아는 사람과 함께 방송한다는 것도 축복이고, 제가 이 방송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환기해 주는 게 이 PD이기도 하고요.
-'싱글벙글쇼' 진행만 33년이에요. 말을 못 한다는 건 '망언' 아닌가요?
김: 사적인 모임을 가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녜요. 전 그냥 들어요, 많이(웃음). 제가 말을 못 하니 이런 (귀 담아 듣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김혜영이 다리 깁스하고 생방송한 이유
-좀 전에 '내가 방송에서 필요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 준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김:무릎뼈가 부러져 다리에 깁스한 적이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 다치면 가장 큰 걱정은 방송이잖아요. 바로 이 PD한테 전화했죠. '내가 다리 깁스를 했어. 어떡하지?' 물었더니, 이 PD가 '누나, 얼굴은 괜찮아?'라고 되묻더라고요. 얼굴은 다치지 않았으니 당연히 괜찮았죠. 그랬더니 '나와서 그냥 앉아 있어. 말 안 해도 돼. 얼굴만 비쳐도 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휠체어에 앉아서 방송했어요.
-다쳤는데 나와 달라고 하는 게 오히려 민폐 아닌가요?
김: 방송하는 사람한텐 안 그래요. '다른 사람 쓸게요'란 말이 출연자로선 제일 서운해요. ''대타' 써서 너 신경 써 준 거야'가 아니라 '끝까지 나를 원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제작진이 전 고맙더라고요. 물론, 부상 정도가 심하면 상황이 다르겠지만요. 저 다리 깁스했을 때 불러준 게 '그런 걸로 물러나지 말고 와. 우리 가족이잖아'란 말로 느껴지더라고요.
연예인인 김혜영은 방송사를 "회사"라 불렀다. 그런 그가 방송일에 대해 말하고 있고, 그의 말을 옆에서 이헌희 PD가 듣고 있다. 박시몬 기자
방송사 티타임의 정체
-'싱글벙글쇼' 할 때 '아침마당'에 합류하셨잖아요. '싱글벙글쇼' 할 때 다른 방송 출연은 삼갔는데 왜 마음을 바꾸신 거예요?
김: 안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웃음). '싱글벙글쇼'가 점심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전에 다른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도 걸리고 또 제가 유독 아침잠이 많거든요. 처음에 '아침마당' 섭외 연락이 왔을 때 '죄송해요' '못 하겠어요'라고 고사했어요. 그런데, 이 PD가 진짜 한번 물면 안 놓는 사람이더라고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나중엔 '싱글벙글쇼' 방송하는 데 찾아와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그냥 얼굴 뵈러 왔어요' 하면서요. 그때 저 이 PD 알지도 못했거든요. 처음엔 짜증도 나고 그랬는데 나중엔 '날 이렇게 원하는데' 싶더라고요. 그래서 (방송) 한다고 했죠. 출연료를 묻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날 원하는데 출연료 욕심내서 될 일인가' 싶어서요. 대신, 딱 한 가지를 부탁했어요. 방송 끝나고 우리 다 같이 모여 차 한 잔 마시자고요. 끝나고 서로 뿔뿔이 흩어지지 말고 모여 '우리 잘했어' 손뼉 쳐주고 격려해 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걸 또 진짜 하더라고요? 그렇게 차를 마시다 언젠가부터는 밥을 먹게 됐죠. 밥을 먹다 보니 이제 '아침마당'에 나온 초대 가수들도 하나둘씩 합류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어디서 밥을 먹는지 아는 거죠. 이젠 '아침마당' 출연하지 않은 날 우리 밥 먹는 데 찾아와 같이 밥 먹는 가수들까지 생겼어요. 진성 오빠요.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부러워해요(웃음).
-낭만이네요.
김: 그게 우리 '도전! 꿈의 무대'의 힘인 거 같아요.
-이 PD께선 왜 그렇게 김혜영씨를 잡고 싶었던 거예요?
이: '아침마당' 시작했을 때였거든요. 외주 제작 프리랜서 PD다 보니 매주가 절박했어요. 준비하면서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요. 그럼 결국 누구랑 어떻게 하느냐 거든요. 그때 누나를 찍었어요. 전화해 출연 요청을 하니 안 한다고 하는 거예요. 일단 알겠다고 끊고 나중에 '저 이 PD인데요'라면서 계속 연락했죠.
-'환상의 콤비' 시그니처 질문입니다. 연예계에 유명한 말 있잖아요. 제작진은 '분칠 한 것들(연예인) 믿으면 안 돼'라고 하고, 출연자들은 '어우 진짜 방송사 놈들'이라며 이를 갈고. 서로 어떻게 관계가 깊어졌나요?
김: 전 일을 하면 일을 사랑해야 해요. 마음을 주죠. 그러려면 같이 일하는 사람을 제가 좋아해야 하고요. 내가 실수를 해도 서로 애정이 있어야 용서가 되잖아요. 상대도 마찬가지고요. '아침마당'을 하면서 이 PD한테 느낀 건 '선함'이에요. 사회적 약자들을 무대 주인공으로 많이 세우더라고요. 많은 방송을 봤지만, 우리처럼 사회적 약자들 많이 모시고 그분들 얘기 듣는 프로그램은 못 봤어요. 그렇게 모신 분들이 설 무대를 이 PD가 정말 열심히 갈고닦고요. 그때 생각했죠, '괜찮은 놈이다'라고요(웃음).
(이 PD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2021년 표창장을 받았다. "소외된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사회에 큰 귀감이 됐다"고 공을 인정받았다.)
이: 아까 누나가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실제로 그래요. 저한테도 그렇고요. 프리랜서 PD로 매주 평가받고 책임을 지고 하는 일이 고되고 때론 외롭거든요. 얘기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누나예요. 가끔 출연자 선호도 조사를 하거든요? 누나 데려오고 난 뒤 한 조사에서 누나가 1등을 했어요. 그때 '내가 섭외했다니까' 싶어 뿌듯하더라고요.
방송인 김혜영(오른쪽)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 그는 결혼식 당일에도 생방송으로 MBC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진행했다. 1988년 5월 4일 모습. KBS 영상 캡처
"성실은 삶에 대한 예의" '아침마당'을 지키는 사람들
"국어책 100번 읽어 와라". PD는 1981년 MBC에 코미디언으로 들어온 대학생 김혜영을 이렇게 질책했다. 발음이 너무 새 참다 못해 한 쓴소리였다. 김혜영도 처음엔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는 리포터 일을 하며 기본기부터 다졌다. 발음 연습은 기본. 촬영 전 방송 주제를 미리 파악하고 신문과 책을 뒤져 자료를 준비했다.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 모두 직접 썼다. 그렇게 5, 6년을 리포터로 일하며 입에 방송용 말을 익혔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성실은 김혜영 삶의 지론이었다. 그는 책 '행복하기에도 여자의 인생은 짧다'(2007)에 '성실성은 삶에 대한 예의'라고 썼다. "안녕하세요, 김혜영입니다. 오늘은 제가 결혼하는 날이라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방송하고 있답니다." 1988년 5월 4일, 김혜영은 '싱글벙글쇼'의 문을 열며 청취자들에 이렇게 인사했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고백한 것처럼, 그는 결혼식 당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뒤 부리나케 결혼식장으로 이동해 오후 3시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결혼식 한 시간 전까지 일을 한 신부라니. 그의 이름 앞에 '최장수 DJ(33년· '싱글벙글쇼')'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고 붙는 배경이다.
이 PD도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성실"이라고 말했다. 33년 동안 일하며 수술대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방송을 펑크 내 본 적이 없다". '아침마당' 최고참 제작진이지만, 출연자 섭외부터 인터뷰, 대본 작성 그리고 무명 가수들 노래 연습을 모두 직접 챙긴다. "출연자를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출을 하면 그 사람 얘기가 프로그램에 녹지 않고 붕 떠요. 인터뷰도 하고 노래 연습 과정도 알아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거든요". 이 PD의 말이다.
-'싱글벙글쇼'에서 33년을 진행했고, '아침마당'에선 15년째 출연 중이세요. 장수에 특화된 분 같아요.
김: 다른 건 몰라도 성실 빼면 시체예요(웃음). 라디오 프로그램도 녹음으로 진행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녹음으로 해도 되지만, 청취자분들께 죄스럽더라고요. 성실하지 않았으면 아마 저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앞서도 말했지만 제가 연예인으로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 아녜요. 운이 좋았죠. 무명 시절도 딱히 없었고요. MBC에 공채 코미디언으로 들어와 얼마 안 돼 주인공 맡고 그렇게 쭉 성장했죠. 이건 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저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둔 프로그램들이 있어요(웃음). 다만, 제가 오래 한 프로그램들이 워낙 존재감이 커 그렇게 비치는 것 같아요. 방송 오래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제가 모난 성격은 아니어서 사람들과 크게 부딪히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감정싸움도 잘 안 하는 편이고요.
이: 본인은 운이라고 하는 데 행운도 준비된 사람이어야 누릴 수 있는 거잖아요. 무명 시절 없이 떴다고 해도 본인만의 콘텐츠가 없거나 대인 관계에서 잡음이 생기면 바로 추락하는 게 여기 생리고요. 옆에서 보면 누난 진짜 노력을 많이 해요.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 잘 알고요.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이랄까요.
'싱글벙글쇼' 오프닝 소리 듣기 힘들었지만
-"마이크에 욕심이 없다"는 말을 하셨더라고요.
김: ''싱글벙글쇼'를 그만두셔야 할 것 같아요'란 얘기를 들었을 때 전 그게 정말 잘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강석, 김혜영을 떠나 제작진이 더 좋은 프로그램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게 있는데 이렇게 내치느냐'라는 말은, 안 되는 거죠. 전 출연자잖아요. 방송사에서 더 좋은 프로그램 만들겠다고 하면 당연히 자리를 비워줘야죠.
-사람 마음이란 게 또 그렇지 않잖아요.
김: 33년 동안 누가 이렇게 '마이크를 마음대로 갖고 놀아라' 돗자리를 깔아주겠어요. 감사해요. 그 말은 했어요, 방송사에. '그만둘 때 예의는 지켜달라'고요. 그 부탁에 맞게 저와 강석씨한테 떠날 준비를 할 시간을 주더라고요. 그럼 된 거죠. 그래서 마무리가 잘 됐어요. 물론 33년 동안 사랑했던 애인('싱글벙글쇼')과 이별해야 하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한동안은 '싱글벙글쇼' 오프닝 타이틀 듣는 것도 힘들었고요. 이제 그 타이틀 음악도 바뀌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웃음).
이헌희(가운데) PD가 가수 최상(왼쪽), 성빈과 청계산에 오른 모습. 최상은 섬유근육통을, 성빈은 근육이 위축되는 희소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앓고 있다. 둘 다 '도전! 꿈의 무대'에 출연했다. 이 PD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청계산에 '아침마당' 애프터 모임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 출연자들이 인생 상담 차 연락을 해요. 힘든 친구들이거든요. 그렇게 얘기 듣다 '청계산 와라' 하죠. 같이 등산하고 내려가 막걸리 한잔하면서 얘기하고요. 그 친구들 사연을 대본으로 정리하려면 내가 그 친구가 돼야 해요. 그래야 상대도 마음을 열고 속얘기를 할 수 있고, 그걸 가벼이 다루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만나다 보니 남 같지 않은 거예요. 사정 뻔히 아니까 힘들다고 하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고요. 올핸 제가 아파 산을 못 탔어요. 내년 봄엔 다시 같이 산 오르고 가서 막걸리 한잔하지 않을까 싶어요. 청계산 모임 예약이 많이 밀려 있거든요(웃음).
'아침마당'의 '뒷것'들
김혜영의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다. 6남매와 부모, 총 8명의 식구가 군인 월급으로 먹고살기에 살림살이는 늘 빠듯했다. 김혜영이 MBC 코미디언이 되고 나서 받은 첫 월급은 18만 5,000원. 당시 집에 100만 원이 넘는 빚이 있었던 터라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24시간을 48시간처럼" 움직였다. 고단한 삶으로 얼굴에 웃음을 잃은 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서였다.
'짠순이'였던 넷째 딸은 신혼생활도 남편이 혼자 살던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작은 전세 아파트에서 시작했고, 냉장고도 장롱도 남편이 쓰던 것을 그대로 썼다. 그의 집엔 아직도 화장대가 없다. TV 앞 테이블에 놓인 작은 상자에 로션하고 스킨, 영양제 정도만 놓고 쓴다. 또 다른 반전 하나. 그는 아파트에서 '김 반장'으로 통한다. 올해로 25년째 동 반장을 맡고 있다. 추석 등 명절이 되면 경비원 용돈을 챙기기 위해 집마다 돌아다니며 돈을 걷는다.
'연예인으로 살지 말자'. 그는 출산 후 이런 결정을 내렸다. 연예인인 그는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한 대로 '보통 사람'처럼 살려 노력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상당 부분에서 통념을 거스른다. 코미디언 출신이면서도 크게 웃지 않고 씀씀이도 클 법한데 무척 검소하다. 화려하게 잘 나가는 사람에서 느껴지는 그 어떤 불안감도 없다'. 손석희 MBC 전 아나운서는 김혜영 책에 이런 글을 남겼다. 노래 '아침이슬'을 만든 고(故) 김민기가 말한,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뒷것'으로 김혜영이 '아침마당'에서 살 수 있는 이유다.
'청년 이헌희'도 절실했다. 방송일은 하고 싶은데 상황과 처지가 안 돼 방송사 지원조차 꿈꿀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한겨울 서울 여의도 KBS 주위를 열 바퀴 씩 도는 것뿐이었다. 꽁꽁 언 몸을 녹이려 잔술 한 잔을 사 마시고 나면 주머니에 남은 돈이 없어 그는 결국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너 집으로 갔다. 외주 제작사 PD로 33년을 '뒷것'으로 살아온 이 PD는 무대 뒤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어려울 때 주위 분들 도움받으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다 절 믿지 않을 때 '이 친구 할 수 있다'고 믿어줘서요. '아침마당'을 하다 나갔다 다시 들어왔는데 그때도 KBS에서 어떤 분이 절 믿어줘서 가능했죠. 저도 무명 가수들에게 그런 발판이 되고 싶어요."
김혜영(오른쪽)과 강석이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진행하며 대화하고 있다. MBC 제공
"연예인으로 살면 제가 다칠 거 같았어요"
-연예인처럼 살지 않으시네요.
김: 아까도 말했지만, 저 연예인으로서 재능이 없어요. 혼자 무대를 꾸려가거나 이러질 못하거든요. 그걸 코미디를 하면서 깨달았어요. '아, 내가 끼가 없구나'란 걸요. 결혼하고 아이 낳을 때쯤 돼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연예인으로 살아야 할지 말지를요. 그때 '연예인으로 살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연예인으로 살면 제가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다치지 않으려고 제가 그렇게 방어를 한 거 같아요.
-외주제작사 PD로 33년을 일하셨잖아요. 지금이야 김태호, 나영석 같은 스타 PD가 나와 외주제작사 차려 콘텐츠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열악했잖아요. 어떻게 버티셨나요?
이: 93년도에 방송 일을 시작했어요. 스물아홉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늦은 나이였죠. 나이가 많으니 외주제작사에서도 다들 안 뽑으려고 하는 거예요. 정말 너무 힘들 게 일을 시작했어요. 방송사 시험은 엄두도 못 냈어요. 제가 방송사 입사 시험을 볼 자격도 처지도 안 됐거든요. 제가 1세대 외주 제작 PD예요. 예전엔 방송사 '갑질'이 많았죠. 권위주의 시대였고요. 물론 지금은 방송사 갑질이 없어졌죠. 시대도 바뀌었고, 권위주의 세대도 물러가고 방송사도 세대교체가 됐거든요. 예전엔 갑질도 당해 힘들고 외주제작 PD라 설움도 많았는데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정말 이 일이 절실했거든요. 언젠가는 내가 PD로 꼭 인정받는다, 이 생각만 했죠.
'환상의 콤비' 이헌희 PD와 김혜영. 김혜영은 이 PD가 건강하길, 이 PD는 "누나"가 지금만 같기를 각각 바랐다. 박시몬 기자
소크라테스 말이 나침반
-이 PD님 휴대폰 카카오톡 프로필에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란 문구가 적혀 있더라고요.
이: 소크라테스 말이에요. 탈옥 제안을 거부하면서 '어영부영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그 말 그대로 살고 싶어서요.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방송하고 싶기도 하고요.
-김혜영씨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시더라고요.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인 사랑의열매에 1억 원 이상을 기부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김: 라디오 방송 전에 신문을 여러 개 봐요. 구두를 닦아 번 돈을 모아 1억 원을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분 얘기가 신문에 작게 실렸더라고요. 처음엔 '구두 한 켤레 닦는 데 몇 천 원 할 텐데 1억 원을 모으려면 도대체 몇 년을 모아 이렇게 기부를 한 걸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삶을 멋지게 사는 분도 계시는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돈을 버는 나는 뭔가' 반성하게 되고요. 그때부터 1년에 2,000만 원씩 모았어요. 5년 동안 1억 원을 만들어 '싱글벙글쇼' 30주년(2017) 때 기부했고요. 어떤 대단한 의미에서 나눔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냥 하고 싶은데, 해야 할 것 같은 데 해서 시작했어요. 캄보디아에 초등학교 짓는 데 힘을 보탠 건 (나눔재단) 월드채널 홍보대사 활동을 10년 넘게 하면서 캄보디아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던 분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했고요. 아이들이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엄마 되게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뿌듯하기도 하고요(웃음).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게 사명"
-이 PD님은 지금까지 프로그램 기획한 프로그램을 보니 '분교의 아이들' '무명 가수' 등 소외자들의 삶에 주목하신 것 같아요.
(그는 2009년 KBS2 'TV동화 행복한 세상 추석 특집-나 홀로 학교에'를 제작해 독립 PD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 방송 최고의 덕목은 '지인(知人)'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 사명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사람들을 알아가고, 그 과정을 통해 따뜻하게 만든 이야기로 세상을 데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환상의 콤비'로 서로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요.
김: 건강해서 늘 함께하길.
이: 지금처럼만, (마음) 늙지 않고.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함께 도전해 세상의 편견을 지우고 변화를 이끈 대중문화 단짝들 인터뷰.
KBS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 15년 동안 호흡을 맞춘 방송인 김혜영(왼쪽)과 이헌희 PD. "'아내가 (김혜영) 언니가 잘 이끌어줄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인터뷰에 낯선 이 PD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아침마당'의 두 대들보가 최근 서울 여의도 KBS 마당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시몬 기자
야마토게임하기 가수 임영웅, 박서진 그리고 배우 강하늘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 출신이다. 20대 때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군고구마를 팔던 임영웅은 이곳에서 노래하며 시청자들에 가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하늘은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고등학생 때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경제적 형편 탓에 따로 떨어져 산다는 어머니에게 안부를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전했다. '아침마당'은 이렇게 절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전국 이야기 마당'이었다. 그렇게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나누려 편 '마당'이 지난달 1만 회를 맞았다. 1991년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34년째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군고구마를 팔며 가수의 꿈을 키웠던 온라인릴게임 '청년 임영웅'의 모습. 그는 '아침마당' 수요일 코너 '도전! 꿈의무대'에 출연해 이름을 시청자에 알리기 시작했다. KBS 영상 캡처
강하늘(왼쪽)이 아버지와 함께 '아침마당'에서 노래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모습이다. KBS 영 게임몰 상 캡처
"공감 능력 없으면 방송하면 안 되죠"
이 장수 프로그램의 대들보는 매주 수요일에 전파를 타는 '도전! 꿈의 무대'다. 전국의 무명 가수들이 이 마당의 주인공. '도전! 꿈의 무대'에서 2017년 첫 방송부터 함께 한 방송인 김혜영 릴게임사이트추천 (63)은 가수로 완성되지 않은 '미생'들에 꿈을 좇다 겪은 상처와 실패를 끊임없이 고백하게 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흉터도 망설임 없이 들췄다. 온몸으로 듣는 경청의 자세 그리고 진심 어린 공감이 그의 무기였다.
"가끔가다 직업을 얕잡아 보고 쓰레기 툭 버리며 '치우라'고 해 아빠가 걱정도 되지만, 빨리 커서 아빠처럼 멋진 환경 미화원이 되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눈물을 쏟은 무명 가수 송상중씨를 보며 김혜영은 이렇게 말했다. "열세 살 아이가 아빠의 감정을 세세하게 읽고 아빠의 직업을 따라 하겠다는 건 그만큼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송상중씨. 그의 아들은 "아빠처럼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전! 꿈의 무대' 출연 모습. KBS 영상 캡처
'아침마당' 1만회 특집에서 김혜영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출연자의 사연을 듣고 위로를 건네고 있다. KBS 영상 캡처
이런 김혜영의 마음을 마당 밖에서 비추는 이가 있다. 이헌희(60), '도전! 꿈의 무대'를 기획한 외주제작 PD다. 두 사람은 2010년부터 '아침마당'에서 '신 부부열전'으로 시작해 '도전! 꿈의 무대'까지 15년 동안 일촉즉발의 생방송 현장을 지켜왔다. 누구나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게 두 사람이 함께 연 여러 마당의 공통점이었다.
괜히 '환상의 콤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오랜 생존의 비결로 "경청의 힘"을 똑같이 꼽았다. 이 PD는 무명 가수들에 '오은영 박사'로 통한다. 인생 상담 요청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 후에도 힘들어하는 무명 가수들이 있으면 이 PD는 청계산으로 '등산 번개'를 친다. 같이 산 오르며 땀 빼고 내려와 막걸리 한잔하며 고민을 들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아침 마당' 밖에서 이뤄지는 경청의 애프터서비스(AS)다.
"방송일 하는 사람에 제일 중요한 덕목이 공감 능력이라 생각해요. 시청자와 공감해야 하는 게 일인데 그걸 못하는 사람들은 방송하면 안 되죠." 이 PD의 말이다. 두 사람을 최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이 PD는 김혜영을 "누나"라 불렀다. 끈끈하면서도 격의 없는 인연이었다.
KBS '아침마당'에서 '도전! 꿈의 무대'를 제작하고 있는 이헌희(오른쪽) PD의 말을 김혜영이 웃으며 듣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절실하십니까?" 출연자에 묻는 이유
-스태프들 얘기 들어보니, 출연자 섭외할 때 '절실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서요.
이: 네(웃음). 절실함에 대해 얘기하려면 기획 계기부터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2017년 11월 첫 방송 전 6개월 동안 이 코너를 준비했는데 기획할 때부터 '절실함'이란 키워드로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여름 지나 가을 낙엽 질 때쯤 '무명 가수들의 삶을 다뤄보자'고 방향을 잡았고요. 무명 가수들, 삶도 무대도 진짜 절실한 사람들이거든요. 업계 추산으로 1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무명 가수들의 절실함을 보여주면 시청자들도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지 않을까 싶었어요. 무명 가수들에 응원도 해주면서요. 절실함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무게라고 생각해요. 절실함이 큰 사람일수록 그가 지닌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믿고요. 절실함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닥쳤을 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도 하죠.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 꿈에 닿을 수 있도록 우리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다리가 바로 절실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도전! 꿈의 무대'도 절실한 무대이길 바랐어요.
트로트 가수 김다나가 '도전! 꿈의 무대'에 출연해 오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오빠는 교통사고로 지체장애를 겪고 있다. KBS 영상 캡처
"그 분 치아 제가" 시청자도 나섰다
-8년 동안 봤던 무대 중 가장 절실해 보였던 출연자는 누구였나요?
이: 김다나씨요. 그 친구 사연은 정말 가슴이 저렸어요. 고등학생 때 부모님 사업이 망한 뒤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더라고요. 그 이후 어머니도 5년 만에 만나고요. 그런데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 중이셨고, 우여곡절 끝에 만난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셨어요. 오빠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지체장애와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요. 다나가 지원서에 '내가 쓰러지면 가족이 무너진다'고 썼더라고요.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섭외 준비 차 그 친구를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듣고 그 내용 중 일부를 방송 대본에 옮기는 데 정리하면서 많이 울었거든요. 다나가 방송에 나왔을 때 오빠도 같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너무 어렵게 살고 고생해서 치아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웃을 때도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고요. 그 방송을 본 시청자분 중에 치과를 운영하시던 분이 KBS로 연락해 왔어요. '그 오빠 분 치아 치료해 주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다나 오빠가 무상으로 틀니를 했어요.
김: 다나씨 오빠가 방송에 나와 동생 이름 적힌 명찰을 다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어요. 다나씨한테 가끔 안부를 묻는데, 오빠가 이제 좀 살이 쪘다더라고요. 음식을 편히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 무대에 출연한 무명 가수들이 이 PD를 '아버지' 혹은 '형'이라고 불러요. 기억에 남는 출연자는 '도전! 꿈의 무대' 첫 5승 가수인 박서진이요. 파마한 머리에 빨간색 재킷을 입고 장구를 치는 데 정말 잘하는 거예요. 그땐 좀 통통했는데 장구를 치면서 점프하는데 놀라웠죠. 그 점프가 제겐 절실함으로 보였거든요. 몸 안 좋던 어머니 쾌차와 아버지가 일하는 배에서 자신의 노래가 라디오로 나오는 게 소원이라는 말도 기억나고요. 수줍음이 많아 말할 때도 고개 숙이고 땅 보며 얘기했던 친구였는데 이젠 다른 예능에 나올 땐 말도 잘하고, 그런 모습이 막 뿌듯하더라고요.
이: 의리 있고 변하지 않는 친구예요, 서진이가. '도전! 꿈의 무대' 큰 일 있을 때마다 와서 도와주고요.
트로트 가수 박서진이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17년 '도전! 꿈의 무대' 출연 모습. KBS 영상 캡처
임영웅이 '도전! 꿈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17년 11월 모습이다. KBS 영상 캡처
군고구마 장사하던 임영웅과의 인연
-'무명 임영웅'에겐 어떤 절실함이 보였나요?
이: 출연에 사연이 있어요. 출연자가 펑크를 낸 거예요. 집안일 때문에 나올 수가 없다고요. 당장 다음 주 수요일에 방송해야 하는데 전주 금요일인가 연락이 왔죠. 급하게 출연자를 다시 찾는데 그 친구가 임영웅이었어요. 유튜브에서 그 친구를 봤고요. 신인인데 노래를 참 안정적으로 부르더라고요. 영상 보고 '이 친구는 될 거 같다' 싶었죠. 그래서 급하게 수소문해 임영웅의 연락처를 받고 섭외를 하게 된 거죠. 임영웅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혼자 아들을 키웠어요. 할머니께서 '딸이 고생을 많이 해서 우리 손자 잘돼야 한다'고 했던 말씀이 기억나요. 처음엔 '도전! 꿈의 무대' 5승에 실패했다가 패자부활전을 통해 다시 기회를 얻었죠. 패자부활전 나오기 전에 임영웅이 (서울) 합정동 쪽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어요. 12월 한겨울이었는데 전화를 하니 이 친구가 "예!"라고 다시 도전할 의사를 밝히는데 목소리에서 정말 열정이 묻어나는 거예요. 그 절실함으로 우승(5승)했죠. 지금 생각하면 인연이 되려고 그렇게 만난 게 아닌가 싶어요.
김: '미스터트롯'에서 우승해 임영웅이 스타가 된 뒤에 김영옥 선생님이랑 같이 한 종편 프로그램 촬영 차 임영웅 공연하는 데 찾아간 적이 있어요. 김 선생님이 임영웅을 참 좋아하는데 알지 못하니 긴장된다며 같이 가자고 하셔서요. 대기실에 갔더니 그 친구가 달려와 저를 안아주더라고요. 제가 '아침마당' 때 그 친구를 방송하기 전에 용기 내라고 안아줬는데, 그걸 기억하는 거죠. '변하지 않았구나, 이 친구' 싶었죠. 옛 얘기 하다 보니, 박서진이 임영웅 군고구마 장사하는 데 찾아갔던 것도 기억나네요. 둘 우정이 돈독했죠.
김혜영은 집에 화장대가 없다. TV 앞 선반 작은 상자에 로션 등 서너 가지 화장품만 놓고 쓴다. 그런 그는 인터뷰에도 색조 화장을 하지 않고 왔다. 평소 그의 모습이다. 박시몬 기자
김혜영이 출연자들 안아주는 이유
-출연자 나오면 다 그렇게 안아주세요?
김: 이 PD가 절실함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면, 전 그렇게 절실한 사람들에 '너는 할 수 있다' 힘 불어넣어 주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방송 전 무명 가수들 손잡고 말 한마디라도 더 해서 (분위기) 부드럽게 해 주고요. 그래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분들 있으면 안아주기도 하고요. 무명 가수들에겐 이 무대에서 100%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제 역량을 발휘하려면 긴장 속에서도 그 사람이 편안해야 하거든요.
-김혜영씨가 절실한 출연자들 공감을 참 잘해준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이: 촬영 전 무명 가수들 누나가 안아준다고 했는데 그게 결국 공감의 표현이잖아요.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다가가는 거고요. 그렇게 진심으로 방송해 준다는 게 고마워요, 누나한텐 늘. 저 방송일 33년 했거든요? 억지로 공감하면 결국 티가 나요. 시청자 입장에선 사기당한 거 같죠. '아침마당'에서 15년을 같이 방송하며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대본을 쓸 때 기대는 게 있어요. 출연자들이 부모 얘기할 때 누나도 어머니 돌아가신 뒤 치매를 앓고 계시던 아버지를 가족과 함께 돌봤던 경험이 있고, 직업 군인으로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부모와 자식 간의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거든요.
-장수 프로그램에도 부침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KBS에서 제작진 바뀌면서 김혜영씨도 수요일('도전! 꿈의 무대')에서 다른 요일로 옮겨 함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걸 고사하신 걸로 알아요.
김: (KBS에선) 제가 다른 요일 코너에 들어가면 더 방송을 잘 살려줄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전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코너가 바로 '도전! 꿈의 무대'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말을 잘하는 편은 아녜요. 말하기보다 듣는 게 익숙하고요. 그래서 전 제가 공감을 더 잘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 다른 분들은 촬영할 때 종종 모니터를 보잖아요? 전 안 봐요. 카메라를 아예 신경 안 써요. 그걸 의식하는 순간 '아, 찍는다'란 생각에 제가 연기할 거 같아서요. 그래서 제 옆에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한테 몰두하죠. 그런 모습에 시청자나 청취자분들이 '공감을 잘해준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PD만큼 방송인으로 제 특성을 아는 사람도 없거든요. 나를 잘 아는 사람과 함께 방송한다는 것도 축복이고, 제가 이 방송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환기해 주는 게 이 PD이기도 하고요.
-'싱글벙글쇼' 진행만 33년이에요. 말을 못 한다는 건 '망언' 아닌가요?
김: 사적인 모임을 가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녜요. 전 그냥 들어요, 많이(웃음). 제가 말을 못 하니 이런 (귀 담아 듣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김혜영이 다리 깁스하고 생방송한 이유
-좀 전에 '내가 방송에서 필요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 준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김:무릎뼈가 부러져 다리에 깁스한 적이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 다치면 가장 큰 걱정은 방송이잖아요. 바로 이 PD한테 전화했죠. '내가 다리 깁스를 했어. 어떡하지?' 물었더니, 이 PD가 '누나, 얼굴은 괜찮아?'라고 되묻더라고요. 얼굴은 다치지 않았으니 당연히 괜찮았죠. 그랬더니 '나와서 그냥 앉아 있어. 말 안 해도 돼. 얼굴만 비쳐도 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휠체어에 앉아서 방송했어요.
-다쳤는데 나와 달라고 하는 게 오히려 민폐 아닌가요?
김: 방송하는 사람한텐 안 그래요. '다른 사람 쓸게요'란 말이 출연자로선 제일 서운해요. ''대타' 써서 너 신경 써 준 거야'가 아니라 '끝까지 나를 원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제작진이 전 고맙더라고요. 물론, 부상 정도가 심하면 상황이 다르겠지만요. 저 다리 깁스했을 때 불러준 게 '그런 걸로 물러나지 말고 와. 우리 가족이잖아'란 말로 느껴지더라고요.
연예인인 김혜영은 방송사를 "회사"라 불렀다. 그런 그가 방송일에 대해 말하고 있고, 그의 말을 옆에서 이헌희 PD가 듣고 있다. 박시몬 기자
방송사 티타임의 정체
-'싱글벙글쇼' 할 때 '아침마당'에 합류하셨잖아요. '싱글벙글쇼' 할 때 다른 방송 출연은 삼갔는데 왜 마음을 바꾸신 거예요?
김: 안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웃음). '싱글벙글쇼'가 점심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전에 다른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도 걸리고 또 제가 유독 아침잠이 많거든요. 처음에 '아침마당' 섭외 연락이 왔을 때 '죄송해요' '못 하겠어요'라고 고사했어요. 그런데, 이 PD가 진짜 한번 물면 안 놓는 사람이더라고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나중엔 '싱글벙글쇼' 방송하는 데 찾아와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그냥 얼굴 뵈러 왔어요' 하면서요. 그때 저 이 PD 알지도 못했거든요. 처음엔 짜증도 나고 그랬는데 나중엔 '날 이렇게 원하는데' 싶더라고요. 그래서 (방송) 한다고 했죠. 출연료를 묻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날 원하는데 출연료 욕심내서 될 일인가' 싶어서요. 대신, 딱 한 가지를 부탁했어요. 방송 끝나고 우리 다 같이 모여 차 한 잔 마시자고요. 끝나고 서로 뿔뿔이 흩어지지 말고 모여 '우리 잘했어' 손뼉 쳐주고 격려해 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걸 또 진짜 하더라고요? 그렇게 차를 마시다 언젠가부터는 밥을 먹게 됐죠. 밥을 먹다 보니 이제 '아침마당'에 나온 초대 가수들도 하나둘씩 합류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어디서 밥을 먹는지 아는 거죠. 이젠 '아침마당' 출연하지 않은 날 우리 밥 먹는 데 찾아와 같이 밥 먹는 가수들까지 생겼어요. 진성 오빠요.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부러워해요(웃음).
-낭만이네요.
김: 그게 우리 '도전! 꿈의 무대'의 힘인 거 같아요.
-이 PD께선 왜 그렇게 김혜영씨를 잡고 싶었던 거예요?
이: '아침마당' 시작했을 때였거든요. 외주 제작 프리랜서 PD다 보니 매주가 절박했어요. 준비하면서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요. 그럼 결국 누구랑 어떻게 하느냐 거든요. 그때 누나를 찍었어요. 전화해 출연 요청을 하니 안 한다고 하는 거예요. 일단 알겠다고 끊고 나중에 '저 이 PD인데요'라면서 계속 연락했죠.
-'환상의 콤비' 시그니처 질문입니다. 연예계에 유명한 말 있잖아요. 제작진은 '분칠 한 것들(연예인) 믿으면 안 돼'라고 하고, 출연자들은 '어우 진짜 방송사 놈들'이라며 이를 갈고. 서로 어떻게 관계가 깊어졌나요?
김: 전 일을 하면 일을 사랑해야 해요. 마음을 주죠. 그러려면 같이 일하는 사람을 제가 좋아해야 하고요. 내가 실수를 해도 서로 애정이 있어야 용서가 되잖아요. 상대도 마찬가지고요. '아침마당'을 하면서 이 PD한테 느낀 건 '선함'이에요. 사회적 약자들을 무대 주인공으로 많이 세우더라고요. 많은 방송을 봤지만, 우리처럼 사회적 약자들 많이 모시고 그분들 얘기 듣는 프로그램은 못 봤어요. 그렇게 모신 분들이 설 무대를 이 PD가 정말 열심히 갈고닦고요. 그때 생각했죠, '괜찮은 놈이다'라고요(웃음).
(이 PD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2021년 표창장을 받았다. "소외된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사회에 큰 귀감이 됐다"고 공을 인정받았다.)
이: 아까 누나가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실제로 그래요. 저한테도 그렇고요. 프리랜서 PD로 매주 평가받고 책임을 지고 하는 일이 고되고 때론 외롭거든요. 얘기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누나예요. 가끔 출연자 선호도 조사를 하거든요? 누나 데려오고 난 뒤 한 조사에서 누나가 1등을 했어요. 그때 '내가 섭외했다니까' 싶어 뿌듯하더라고요.
방송인 김혜영(오른쪽)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 그는 결혼식 당일에도 생방송으로 MBC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진행했다. 1988년 5월 4일 모습. KBS 영상 캡처
"성실은 삶에 대한 예의" '아침마당'을 지키는 사람들
"국어책 100번 읽어 와라". PD는 1981년 MBC에 코미디언으로 들어온 대학생 김혜영을 이렇게 질책했다. 발음이 너무 새 참다 못해 한 쓴소리였다. 김혜영도 처음엔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는 리포터 일을 하며 기본기부터 다졌다. 발음 연습은 기본. 촬영 전 방송 주제를 미리 파악하고 신문과 책을 뒤져 자료를 준비했다.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 모두 직접 썼다. 그렇게 5, 6년을 리포터로 일하며 입에 방송용 말을 익혔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성실은 김혜영 삶의 지론이었다. 그는 책 '행복하기에도 여자의 인생은 짧다'(2007)에 '성실성은 삶에 대한 예의'라고 썼다. "안녕하세요, 김혜영입니다. 오늘은 제가 결혼하는 날이라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방송하고 있답니다." 1988년 5월 4일, 김혜영은 '싱글벙글쇼'의 문을 열며 청취자들에 이렇게 인사했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고백한 것처럼, 그는 결혼식 당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뒤 부리나케 결혼식장으로 이동해 오후 3시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결혼식 한 시간 전까지 일을 한 신부라니. 그의 이름 앞에 '최장수 DJ(33년· '싱글벙글쇼')'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고 붙는 배경이다.
이 PD도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성실"이라고 말했다. 33년 동안 일하며 수술대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방송을 펑크 내 본 적이 없다". '아침마당' 최고참 제작진이지만, 출연자 섭외부터 인터뷰, 대본 작성 그리고 무명 가수들 노래 연습을 모두 직접 챙긴다. "출연자를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출을 하면 그 사람 얘기가 프로그램에 녹지 않고 붕 떠요. 인터뷰도 하고 노래 연습 과정도 알아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거든요". 이 PD의 말이다.
-'싱글벙글쇼'에서 33년을 진행했고, '아침마당'에선 15년째 출연 중이세요. 장수에 특화된 분 같아요.
김: 다른 건 몰라도 성실 빼면 시체예요(웃음). 라디오 프로그램도 녹음으로 진행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녹음으로 해도 되지만, 청취자분들께 죄스럽더라고요. 성실하지 않았으면 아마 저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앞서도 말했지만 제가 연예인으로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 아녜요. 운이 좋았죠. 무명 시절도 딱히 없었고요. MBC에 공채 코미디언으로 들어와 얼마 안 돼 주인공 맡고 그렇게 쭉 성장했죠. 이건 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저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둔 프로그램들이 있어요(웃음). 다만, 제가 오래 한 프로그램들이 워낙 존재감이 커 그렇게 비치는 것 같아요. 방송 오래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제가 모난 성격은 아니어서 사람들과 크게 부딪히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감정싸움도 잘 안 하는 편이고요.
이: 본인은 운이라고 하는 데 행운도 준비된 사람이어야 누릴 수 있는 거잖아요. 무명 시절 없이 떴다고 해도 본인만의 콘텐츠가 없거나 대인 관계에서 잡음이 생기면 바로 추락하는 게 여기 생리고요. 옆에서 보면 누난 진짜 노력을 많이 해요.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 잘 알고요.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이랄까요.
'싱글벙글쇼' 오프닝 소리 듣기 힘들었지만
-"마이크에 욕심이 없다"는 말을 하셨더라고요.
김: ''싱글벙글쇼'를 그만두셔야 할 것 같아요'란 얘기를 들었을 때 전 그게 정말 잘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강석, 김혜영을 떠나 제작진이 더 좋은 프로그램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게 있는데 이렇게 내치느냐'라는 말은, 안 되는 거죠. 전 출연자잖아요. 방송사에서 더 좋은 프로그램 만들겠다고 하면 당연히 자리를 비워줘야죠.
-사람 마음이란 게 또 그렇지 않잖아요.
김: 33년 동안 누가 이렇게 '마이크를 마음대로 갖고 놀아라' 돗자리를 깔아주겠어요. 감사해요. 그 말은 했어요, 방송사에. '그만둘 때 예의는 지켜달라'고요. 그 부탁에 맞게 저와 강석씨한테 떠날 준비를 할 시간을 주더라고요. 그럼 된 거죠. 그래서 마무리가 잘 됐어요. 물론 33년 동안 사랑했던 애인('싱글벙글쇼')과 이별해야 하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한동안은 '싱글벙글쇼' 오프닝 타이틀 듣는 것도 힘들었고요. 이제 그 타이틀 음악도 바뀌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웃음).
이헌희(가운데) PD가 가수 최상(왼쪽), 성빈과 청계산에 오른 모습. 최상은 섬유근육통을, 성빈은 근육이 위축되는 희소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앓고 있다. 둘 다 '도전! 꿈의 무대'에 출연했다. 이 PD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청계산에 '아침마당' 애프터 모임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 출연자들이 인생 상담 차 연락을 해요. 힘든 친구들이거든요. 그렇게 얘기 듣다 '청계산 와라' 하죠. 같이 등산하고 내려가 막걸리 한잔하면서 얘기하고요. 그 친구들 사연을 대본으로 정리하려면 내가 그 친구가 돼야 해요. 그래야 상대도 마음을 열고 속얘기를 할 수 있고, 그걸 가벼이 다루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만나다 보니 남 같지 않은 거예요. 사정 뻔히 아니까 힘들다고 하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고요. 올핸 제가 아파 산을 못 탔어요. 내년 봄엔 다시 같이 산 오르고 가서 막걸리 한잔하지 않을까 싶어요. 청계산 모임 예약이 많이 밀려 있거든요(웃음).
'아침마당'의 '뒷것'들
김혜영의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다. 6남매와 부모, 총 8명의 식구가 군인 월급으로 먹고살기에 살림살이는 늘 빠듯했다. 김혜영이 MBC 코미디언이 되고 나서 받은 첫 월급은 18만 5,000원. 당시 집에 100만 원이 넘는 빚이 있었던 터라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24시간을 48시간처럼" 움직였다. 고단한 삶으로 얼굴에 웃음을 잃은 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서였다.
'짠순이'였던 넷째 딸은 신혼생활도 남편이 혼자 살던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작은 전세 아파트에서 시작했고, 냉장고도 장롱도 남편이 쓰던 것을 그대로 썼다. 그의 집엔 아직도 화장대가 없다. TV 앞 테이블에 놓인 작은 상자에 로션하고 스킨, 영양제 정도만 놓고 쓴다. 또 다른 반전 하나. 그는 아파트에서 '김 반장'으로 통한다. 올해로 25년째 동 반장을 맡고 있다. 추석 등 명절이 되면 경비원 용돈을 챙기기 위해 집마다 돌아다니며 돈을 걷는다.
'연예인으로 살지 말자'. 그는 출산 후 이런 결정을 내렸다. 연예인인 그는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한 대로 '보통 사람'처럼 살려 노력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상당 부분에서 통념을 거스른다. 코미디언 출신이면서도 크게 웃지 않고 씀씀이도 클 법한데 무척 검소하다. 화려하게 잘 나가는 사람에서 느껴지는 그 어떤 불안감도 없다'. 손석희 MBC 전 아나운서는 김혜영 책에 이런 글을 남겼다. 노래 '아침이슬'을 만든 고(故) 김민기가 말한,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뒷것'으로 김혜영이 '아침마당'에서 살 수 있는 이유다.
'청년 이헌희'도 절실했다. 방송일은 하고 싶은데 상황과 처지가 안 돼 방송사 지원조차 꿈꿀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한겨울 서울 여의도 KBS 주위를 열 바퀴 씩 도는 것뿐이었다. 꽁꽁 언 몸을 녹이려 잔술 한 잔을 사 마시고 나면 주머니에 남은 돈이 없어 그는 결국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너 집으로 갔다. 외주 제작사 PD로 33년을 '뒷것'으로 살아온 이 PD는 무대 뒤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어려울 때 주위 분들 도움받으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다 절 믿지 않을 때 '이 친구 할 수 있다'고 믿어줘서요. '아침마당'을 하다 나갔다 다시 들어왔는데 그때도 KBS에서 어떤 분이 절 믿어줘서 가능했죠. 저도 무명 가수들에게 그런 발판이 되고 싶어요."
김혜영(오른쪽)과 강석이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진행하며 대화하고 있다. MBC 제공
"연예인으로 살면 제가 다칠 거 같았어요"
-연예인처럼 살지 않으시네요.
김: 아까도 말했지만, 저 연예인으로서 재능이 없어요. 혼자 무대를 꾸려가거나 이러질 못하거든요. 그걸 코미디를 하면서 깨달았어요. '아, 내가 끼가 없구나'란 걸요. 결혼하고 아이 낳을 때쯤 돼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연예인으로 살아야 할지 말지를요. 그때 '연예인으로 살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연예인으로 살면 제가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다치지 않으려고 제가 그렇게 방어를 한 거 같아요.
-외주제작사 PD로 33년을 일하셨잖아요. 지금이야 김태호, 나영석 같은 스타 PD가 나와 외주제작사 차려 콘텐츠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열악했잖아요. 어떻게 버티셨나요?
이: 93년도에 방송 일을 시작했어요. 스물아홉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늦은 나이였죠. 나이가 많으니 외주제작사에서도 다들 안 뽑으려고 하는 거예요. 정말 너무 힘들 게 일을 시작했어요. 방송사 시험은 엄두도 못 냈어요. 제가 방송사 입사 시험을 볼 자격도 처지도 안 됐거든요. 제가 1세대 외주 제작 PD예요. 예전엔 방송사 '갑질'이 많았죠. 권위주의 시대였고요. 물론 지금은 방송사 갑질이 없어졌죠. 시대도 바뀌었고, 권위주의 세대도 물러가고 방송사도 세대교체가 됐거든요. 예전엔 갑질도 당해 힘들고 외주제작 PD라 설움도 많았는데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정말 이 일이 절실했거든요. 언젠가는 내가 PD로 꼭 인정받는다, 이 생각만 했죠.
'환상의 콤비' 이헌희 PD와 김혜영. 김혜영은 이 PD가 건강하길, 이 PD는 "누나"가 지금만 같기를 각각 바랐다. 박시몬 기자
소크라테스 말이 나침반
-이 PD님 휴대폰 카카오톡 프로필에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란 문구가 적혀 있더라고요.
이: 소크라테스 말이에요. 탈옥 제안을 거부하면서 '어영부영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그 말 그대로 살고 싶어서요.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방송하고 싶기도 하고요.
-김혜영씨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시더라고요.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인 사랑의열매에 1억 원 이상을 기부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김: 라디오 방송 전에 신문을 여러 개 봐요. 구두를 닦아 번 돈을 모아 1억 원을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분 얘기가 신문에 작게 실렸더라고요. 처음엔 '구두 한 켤레 닦는 데 몇 천 원 할 텐데 1억 원을 모으려면 도대체 몇 년을 모아 이렇게 기부를 한 걸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삶을 멋지게 사는 분도 계시는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돈을 버는 나는 뭔가' 반성하게 되고요. 그때부터 1년에 2,000만 원씩 모았어요. 5년 동안 1억 원을 만들어 '싱글벙글쇼' 30주년(2017) 때 기부했고요. 어떤 대단한 의미에서 나눔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냥 하고 싶은데, 해야 할 것 같은 데 해서 시작했어요. 캄보디아에 초등학교 짓는 데 힘을 보탠 건 (나눔재단) 월드채널 홍보대사 활동을 10년 넘게 하면서 캄보디아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던 분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했고요. 아이들이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엄마 되게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뿌듯하기도 하고요(웃음).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게 사명"
-이 PD님은 지금까지 프로그램 기획한 프로그램을 보니 '분교의 아이들' '무명 가수' 등 소외자들의 삶에 주목하신 것 같아요.
(그는 2009년 KBS2 'TV동화 행복한 세상 추석 특집-나 홀로 학교에'를 제작해 독립 PD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 방송 최고의 덕목은 '지인(知人)'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 사명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사람들을 알아가고, 그 과정을 통해 따뜻하게 만든 이야기로 세상을 데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환상의 콤비'로 서로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요.
김: 건강해서 늘 함께하길.
이: 지금처럼만, (마음) 늙지 않고.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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