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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바 피크 정상으로 향하는 아이스 구간.
"엘리트 운동선수, 특수부대 출신, 대학교 산악부…."
전 오지탐사대 대원들의 화려한 프로필을 봤을 때, 지원할 용기를 잃었다. 내 스펙은 한없이 초라했다. 전역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 온 뒤 대학교 산악부 활동을 조금 한 게 다였다. 2025년 오지탐사대 모집공고에선 단 10명만 뽑는다고 돼 있었다. 그 10명에 당연히 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2023 오지탐사대 대원이었던 정은 형은 "떨어지더라도 지원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는 조언을 건네줬다.
바다이야기게임다운로드 며칠 고민하다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지원서를 던졌다. 심지어 합격자 발표일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합격 소식도 산악부 후배가 문자로 알려줬다. 믿기지 않아 얼떨떨했다. 일단 기분은 매우 좋았지만 동시에 앞으로 해내야 할 많은 일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국내 훈련 및 탐사 준비는 상상 이상으로 바빴다. 금, 토, 일 3일간 이루어지는 훈련의 릴게임무료 강도는 지금까지 산악회에서 했던 활동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평일에는 개인 일지 작성, 훈련 보고서 작성, 훈련 계획서 작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즈메이마을로 가는 트레킹 중 만난 룽다 앞에서 기도를 준비하고 있다.
모바일야마토
3차 종합훈련 이후로는 본격적인 탐사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정해진 탐사지에 몸만 가면 되는 줄 알았지만 탐사지 선정부터 항공권 발권, 현지 등반가이드 섭외 등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모두 계획하고 준비해야 했다.
눈 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발대식장에 서 있었다. 발대식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 골드몽사이트 하니 정말로 탐사를 떠난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렇게 중국 청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 후 3일간은 현지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가스와 무게 때문에 가져오지 못했던 식량 등을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한 뒤 패킹을 마무리했다.
베이스캠프 야마토게임장 로 향하고 있는 탐사대원들.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된 4일차. 우리는 해발 2,500m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태어나서 가장 높이 올라가본 곳이 설악산 대청봉인데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로 간다니 겁이 났다. 2,000m가 넘어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분명 잘 잤는데…내 호흡곤란에 모두 비상
트레킹 시작점인 2,500m에 도착해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뒷목이 약간 뻐근한 것 이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2시간 정도 지나자 점점 머리가 아프면서 잠이 오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려 앉으면 바로 잠에 들었다. 걸으면서도 잠을 참을 수 없어 휘청거렸다. 그때마다 정윤 형이 자면 안 된다고 계속 옆에서 깨워 주었다.
노차마 피크 캠프1으로 등반하는 날. 날씨가 무척 맑았다.
목적지인 해발 3,200m 즈메이마을에 도착하자 안도감 때문인지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모든 힘이 빠지고, 한기가 들면서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방으로 들어가 타이레놀 한 알을 복용하고 바로 쓰러졌다. 대장님과 정윤 형은 쓰러져 있는 나를 깨워 앉혀놓고 계속 물을 마시게 하고 말을 걸며 잠들지 못하게 했다. 고소적응을 위해선 그래야 한단다. 당장의 괴로움도 문제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무척 깊어갔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이 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하게 일어났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베이스캠프로 출발. 저 멀리 공가산이 보인다. 목적지는 공가산의 위성봉인 노차마 피크(5,588m)와 공바 피크(5,564m)다. 공가산은 해발 7,556m로 등반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 현재까지 300여 명이 도전해 200여 명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27명만이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한 가이드 그레이스 또한 공가산에 도전했지만, 등반 중 발목이 부러져 하산했고, 2027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일러줬다.
노차마 피크 아이스 구간에서 안자일렌을 시작한 후 운행하고 있다.
베이스캠프의 해발고도는 4,000m. 고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잠을 자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적응이 되긴 하는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쯤 벌써 노차마 정상 공격일이 다가왔다.
원래 계획은 캠프1에서 하루 더 머물고 정상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아 바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원들의 고소적응이 덜 됐다는 것. 고소적응을 위해 시간을 보내면 날씨가 악화되고, 바로 가기엔 몸 상태들이 안 좋았다.
오랜 시간 토론 끝에 캠프1에서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캠프1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도를 800m가량 올려야 했고, 모두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나는 멀어져가는 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캠프1을 향해 올라갔다. 운행을 시작하고 8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저 멀리 펄럭이는 룽다와 함께 먼저 올라간 정윤 형과 종윤이가 보였다.
노차마 피크 등정 후 하산.
건강상태를 체크했는데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아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정윤 형은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고, 종윤이는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다른 텐트로 가서 산소통을 가져왔고, 대장님과 청경이 또한 일어나 있었다. 그들은 나의 호흡이 굉장히 불안정해 그 소리에 깨어나 보니 내 입술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잘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이었다니 덜컥 겁이 났다.
하산할 힘까지 쏟아 부어 정상으로
따뜻한 물을 계속 마시며 심호흡을 하니 다행히 산소포화도는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그래서 새벽 2시로 예정된 출발시간을 1시로 앞당겨 빠르게 정상 공격을 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출발시간이 정해지자 아팠던 머리는 말끔히 호전됐다. 바로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 준비를 했다.
공바 피크 캠프1으로 오르는 날 찍은 단체 사진.
그렇게 8월 1일 1시, 앞사람의 발걸음, 옅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정상공격이 시작되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 쉬고 싶었지만 조금만 지체해도 앞사람과 멀어지기에 그러지 못했다. 너덜지대에서 횡으로 이동해 멀리 보이는 헤드랜턴 불빛 쪽으로 갔다. 이어 등반을 해야 하는 조금 긴 구간이 나왔다. 별도의 앵커나 볼트가 없기에 순전히 손과 발만을 믿고 올라야 하는 지형이었다. 떨어지는 무수한 낙석 탓에 한 명씩 조심히 올라갔다.
쉴 때면 종윤이는 고소도 안 오는지 별이 아름답다고 하늘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청경이는 계속 꾸벅꾸벅 졸아서 종윤이에게 혼이 났다. 혼나는 청경이를 보며 나도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보았다.
공바 피크 너덜지대 통과 중 너무 힘들어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너덜지대를 계속 걷다 보니 드디어 빙벽 구간. 이곳에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두 그룹으로 나눠 안자일렌을 했다. 크램폰을 신고 조금 올라가니 종윤이의 크램폰이 벗겨졌다. 크램폰 착용을 마치고 다시 운행을 시작하고 또 몇 걸음 안 가서 이번에는 내 크램폰과 종윤이의 크램폰이 둘 다 벗겨졌다. 분명 출발 전에 꼼꼼히 맞췄는데도 계속 벗겨졌다. 이렇게 가다 계속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그냥 왼발의 크램폰을 벗고 오른발에 최대한 집중해서 올랐다. 생각보다 얼음이 꽝꽝 얼어 있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해발고도는 5,000m가 넘었다. 정말 힘들었다. 선두로 가던 그레이스는 주기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나와 종윤이의 상태를 체크한다. 정신을 잃지 않도록 이름이나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후에 그레이스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질문에 대답하는 나와 종윤이의 모습이 정말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열 걸음 가고 한 번 쉬기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갔는데 아뿔싸 그곳은 가짜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조금 다운 클라이밍을 한 뒤 그 뒤에 있는 언덕을 올라야지 진짜 정상이었다. 짧은 좌절을 뒤로 한 채 마저 가니 선두 그룹이 설치한 고정로프가 있다. 이를 통해 편하게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공가산과 함께 해가 떠오른다. 감탄도 잠시 먼저 올라온 팀이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상에 30분이나 있었기에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사진을 찍고 서둘러 하산했다.
공바 피크 등반을 위해 이동 중 휴식. 고소적응이 된 탓에 모두 쾌조의 컨디션이다.
하산하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얼음 위에선 긴장을 조금만 풀면 추락할 수도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이스 구간이 끝나자 긴장은 조금 풀렸는데 그와 동시에 엄청난 피로가 몰려들었다. 다시 끝없이 펼쳐진 너덜지대 저 멀리 캠프1이 보이지만 도통 가까워지지 않는다. 해가 떠서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목적지가 뻔히 눈앞에 보이니 새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보다 더 죽을 맛이다. 하산할 힘을 남겨두라고 했는데 정상에 올라가면서 100% 다 써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한 발씩 내딛으니 캠프1. 곧바로 베이스캠프로 서둘러 하산했다. 어제 올랐던 끊임없는 오르막이 오늘은 끝없는 내리막이다. 노차마를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인사를 건네며 그들이 정상에 가길 기원했다.
베이스캠프로 하산 후 총평의 시간을 가졌다. 다들 너무 힘들어서 내심 포기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도 잘 해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등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겨지는 노차마가 이 정도인데 다음 목표인 공바 피크를 오를 수 있을까.
공바 피크 정상 직전. 선두에서 등반하다가 지친 나머지 그대로 쓰러져 쉬고 있는 종윤이와 대장님.
논의했다. 모두 회의적이다. 아예 안 가는 방안도 도마에 올랐다. 일단 내일 휴식을 취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우리는 늦잠이 허락된 탓에 새벽 동안 달무티 게임을 하며 공바 피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엔 다들 못 하겠다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대", "안 되면 내려오면 되지", "안 하면 후회할 것" 등 한마디씩 얹어지자 점점 의기가 투합됐다.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다
다음날 굳게 다짐했다. 공바 피크 한국 초등을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 공바 피크 캠프1으로 가는 길은 불어난 빙하수 계곡 때문에 앞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돌다리가 많이 유실됐다. 초반에는 그래도 몇 개 있었지만 후반에는 아예 없어서 가이드가 들어가서 하나씩 만들어 주었다.
계곡을 지나니 공가산과 함께 꽃이 핀 푸르른 들판이 나왔다. 정말 아름다웠다. 빨리 캠프1에 도착해 휴식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맘 놓고 풍경을 감상했다. 한국에 있을 때 공바 피크는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팀과 함께 꼭 오르고 싶어 운행 중 돌탑이나 룽다가 보이면 앞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공바 피크 정상.
공바 피크 캠프1도 해발 4,800m에 있다. 고도를 많이 올려야 했기에 조금 힘들었다. 설상가상 비구름까지 몰려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도가 높아 우박으로 쏟아져서 옷이 많이 젖지는 않았다. 캠프1은 쓰레기도 많고 바위들이 많아 바닥이 고르지 못했다.
밥을 먹고 간단히 정리한 뒤 장비를 준비했다. 공바는 등반 난이도가 높아 스크루와 스노바 등 많은 장비들이 필요했다. 자일도 반으로 잘라 무게를 줄였다. 대기시간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보온 의류도 넉넉하게 챙겼다. 자연스레 많은 장비들이 하네스와 배낭으로 와서 노차마 때와 달리 배낭이 엄청 무거웠다.
어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노차마를 다녀온 가이드에 의하면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정상을 오른 팀이 한 팀도 없다고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어제가 정상 공격이었지만 하루 먼저 오른 우리의 결정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노차마에 한 번 다녀와서인지 고소 때문에 크게 힘들어하는 대원은 없었다. 체감상 눈을 감자마자 기상 시간이 되었다. 출발하자마자 아주 가파른 너덜지대를 올라가야 했다.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이니 그럭저럭 올라갈 만했다.
무사히 너덜지대를 지나고 본격적인 운행이 시작되었다. 분명 전체 중 아이스 구간이 70%라고 봤는데 계속 걸어도 도통 얼음은 나오지 않고 계속 너덜지대다. 첫 언덕을 온 힘을 다해 오른 탓일까 계속 뒤쳐졌다. 쉬지 않고 가고 있는데 선두그룹은 왜 이렇게 빠른 것일까? 도통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힘이 푹푹 빠진다.
모든 등반을 마친 후 베이스캠프에 장비를 정리해 뒀다.
지옥 같은 너덜에서 오른발, 왼발을 반복하니 드디어 아이스 구간이 나왔다. 가이드는 크램폰 없이 올라갈 수 있다고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모두 크램폰을 체결했다. 두 번의 어센딩 후 대장님께서 구간이 완만하다고 판단해 장비를 모두 회수하고 다시 걸어서 운행했다. 크램폰을 뺄 수 없어서 그냥 신고 올라가니 금속부위가 다 갈렸다. 저 멀리 한국에서 크램폰 아까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덜을 오르니 정말 설산 같은 곳이 나왔다. 대장님이 그곳에서 배낭을 놔두고 가자고 해서 행동식과 에너지 음료만 하나 마시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올라갔다. 고정 로프가 깔려 있었는데 눈에 파묻혀서 한 발 가고 로프를 뜯어 올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이어 크레바스가 곳곳에 있어 이 구간은 또 어떻게 갈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대장님이 먼저 발을 깊게 밟고 올라가면 우리는 계단처럼 그곳을 밟고 올라가는 식으로 운행하기로 했다. 대장님과 종윤이, 청경이가 차례대로 정상 직전까지 올라갔다.
그때 모두 정상에 같이 올라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는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정윤 형을 기다렸다. 밑에서 힘겹게 바일 한 번 발 한 번을 반복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정윤 형은 이번 탐사에 오기 전 아콩카과에서 정상공격을 하다 중간에 하산을 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그의 사투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듣기로는 검은 선글라스로 감췄지만 울면서 올라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윤 형까지 올라오고 나서 우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어 간다."
대장님의 말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여 낯설던 얼굴이 어느새 동료의 얼굴로 바뀌었다.
복학 후 졸업과 취업이 가까워질수록 길은 막막해졌다. 결국 휴학을 선택하며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 오지탐사대에 지원했다. 무사히 탐사를 마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고민과 불안이 참 무색하다.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할 뿐.
탐사대에서 웃고 울며 함께했던 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굳이 서둘러 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지 탐사에서의 경험은 마음속에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로 바꿔 주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기자 admin@gamemong.info
"엘리트 운동선수, 특수부대 출신, 대학교 산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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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다음날 아침이 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하게 일어났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베이스캠프로 출발. 저 멀리 공가산이 보인다. 목적지는 공가산의 위성봉인 노차마 피크(5,588m)와 공바 피크(5,564m)다. 공가산은 해발 7,556m로 등반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 현재까지 300여 명이 도전해 200여 명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27명만이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한 가이드 그레이스 또한 공가산에 도전했지만, 등반 중 발목이 부러져 하산했고, 2027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일러줬다.
노차마 피크 아이스 구간에서 안자일렌을 시작한 후 운행하고 있다.
베이스캠프의 해발고도는 4,000m. 고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잠을 자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적응이 되긴 하는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쯤 벌써 노차마 정상 공격일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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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토론 끝에 캠프1에서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캠프1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도를 800m가량 올려야 했고, 모두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나는 멀어져가는 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캠프1을 향해 올라갔다. 운행을 시작하고 8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저 멀리 펄럭이는 룽다와 함께 먼저 올라간 정윤 형과 종윤이가 보였다.
노차마 피크 등정 후 하산.
건강상태를 체크했는데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아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정윤 형은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고, 종윤이는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다른 텐트로 가서 산소통을 가져왔고, 대장님과 청경이 또한 일어나 있었다. 그들은 나의 호흡이 굉장히 불안정해 그 소리에 깨어나 보니 내 입술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잘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이었다니 덜컥 겁이 났다.
하산할 힘까지 쏟아 부어 정상으로
따뜻한 물을 계속 마시며 심호흡을 하니 다행히 산소포화도는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그래서 새벽 2시로 예정된 출발시간을 1시로 앞당겨 빠르게 정상 공격을 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출발시간이 정해지자 아팠던 머리는 말끔히 호전됐다. 바로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 준비를 했다.
공바 피크 캠프1으로 오르는 날 찍은 단체 사진.
그렇게 8월 1일 1시, 앞사람의 발걸음, 옅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정상공격이 시작되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 쉬고 싶었지만 조금만 지체해도 앞사람과 멀어지기에 그러지 못했다. 너덜지대에서 횡으로 이동해 멀리 보이는 헤드랜턴 불빛 쪽으로 갔다. 이어 등반을 해야 하는 조금 긴 구간이 나왔다. 별도의 앵커나 볼트가 없기에 순전히 손과 발만을 믿고 올라야 하는 지형이었다. 떨어지는 무수한 낙석 탓에 한 명씩 조심히 올라갔다.
쉴 때면 종윤이는 고소도 안 오는지 별이 아름답다고 하늘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청경이는 계속 꾸벅꾸벅 졸아서 종윤이에게 혼이 났다. 혼나는 청경이를 보며 나도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보았다.
공바 피크 너덜지대 통과 중 너무 힘들어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너덜지대를 계속 걷다 보니 드디어 빙벽 구간. 이곳에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두 그룹으로 나눠 안자일렌을 했다. 크램폰을 신고 조금 올라가니 종윤이의 크램폰이 벗겨졌다. 크램폰 착용을 마치고 다시 운행을 시작하고 또 몇 걸음 안 가서 이번에는 내 크램폰과 종윤이의 크램폰이 둘 다 벗겨졌다. 분명 출발 전에 꼼꼼히 맞췄는데도 계속 벗겨졌다. 이렇게 가다 계속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그냥 왼발의 크램폰을 벗고 오른발에 최대한 집중해서 올랐다. 생각보다 얼음이 꽝꽝 얼어 있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해발고도는 5,000m가 넘었다. 정말 힘들었다. 선두로 가던 그레이스는 주기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나와 종윤이의 상태를 체크한다. 정신을 잃지 않도록 이름이나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후에 그레이스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질문에 대답하는 나와 종윤이의 모습이 정말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열 걸음 가고 한 번 쉬기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갔는데 아뿔싸 그곳은 가짜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조금 다운 클라이밍을 한 뒤 그 뒤에 있는 언덕을 올라야지 진짜 정상이었다. 짧은 좌절을 뒤로 한 채 마저 가니 선두 그룹이 설치한 고정로프가 있다. 이를 통해 편하게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공가산과 함께 해가 떠오른다. 감탄도 잠시 먼저 올라온 팀이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상에 30분이나 있었기에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사진을 찍고 서둘러 하산했다.
공바 피크 등반을 위해 이동 중 휴식. 고소적응이 된 탓에 모두 쾌조의 컨디션이다.
하산하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얼음 위에선 긴장을 조금만 풀면 추락할 수도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이스 구간이 끝나자 긴장은 조금 풀렸는데 그와 동시에 엄청난 피로가 몰려들었다. 다시 끝없이 펼쳐진 너덜지대 저 멀리 캠프1이 보이지만 도통 가까워지지 않는다. 해가 떠서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목적지가 뻔히 눈앞에 보이니 새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보다 더 죽을 맛이다. 하산할 힘을 남겨두라고 했는데 정상에 올라가면서 100% 다 써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한 발씩 내딛으니 캠프1. 곧바로 베이스캠프로 서둘러 하산했다. 어제 올랐던 끊임없는 오르막이 오늘은 끝없는 내리막이다. 노차마를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인사를 건네며 그들이 정상에 가길 기원했다.
베이스캠프로 하산 후 총평의 시간을 가졌다. 다들 너무 힘들어서 내심 포기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도 잘 해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등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겨지는 노차마가 이 정도인데 다음 목표인 공바 피크를 오를 수 있을까.
공바 피크 정상 직전. 선두에서 등반하다가 지친 나머지 그대로 쓰러져 쉬고 있는 종윤이와 대장님.
논의했다. 모두 회의적이다. 아예 안 가는 방안도 도마에 올랐다. 일단 내일 휴식을 취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우리는 늦잠이 허락된 탓에 새벽 동안 달무티 게임을 하며 공바 피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엔 다들 못 하겠다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대", "안 되면 내려오면 되지", "안 하면 후회할 것" 등 한마디씩 얹어지자 점점 의기가 투합됐다.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다
다음날 굳게 다짐했다. 공바 피크 한국 초등을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 공바 피크 캠프1으로 가는 길은 불어난 빙하수 계곡 때문에 앞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돌다리가 많이 유실됐다. 초반에는 그래도 몇 개 있었지만 후반에는 아예 없어서 가이드가 들어가서 하나씩 만들어 주었다.
계곡을 지나니 공가산과 함께 꽃이 핀 푸르른 들판이 나왔다. 정말 아름다웠다. 빨리 캠프1에 도착해 휴식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맘 놓고 풍경을 감상했다. 한국에 있을 때 공바 피크는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팀과 함께 꼭 오르고 싶어 운행 중 돌탑이나 룽다가 보이면 앞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공바 피크 정상.
공바 피크 캠프1도 해발 4,800m에 있다. 고도를 많이 올려야 했기에 조금 힘들었다. 설상가상 비구름까지 몰려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도가 높아 우박으로 쏟아져서 옷이 많이 젖지는 않았다. 캠프1은 쓰레기도 많고 바위들이 많아 바닥이 고르지 못했다.
밥을 먹고 간단히 정리한 뒤 장비를 준비했다. 공바는 등반 난이도가 높아 스크루와 스노바 등 많은 장비들이 필요했다. 자일도 반으로 잘라 무게를 줄였다. 대기시간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보온 의류도 넉넉하게 챙겼다. 자연스레 많은 장비들이 하네스와 배낭으로 와서 노차마 때와 달리 배낭이 엄청 무거웠다.
어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노차마를 다녀온 가이드에 의하면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정상을 오른 팀이 한 팀도 없다고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어제가 정상 공격이었지만 하루 먼저 오른 우리의 결정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노차마에 한 번 다녀와서인지 고소 때문에 크게 힘들어하는 대원은 없었다. 체감상 눈을 감자마자 기상 시간이 되었다. 출발하자마자 아주 가파른 너덜지대를 올라가야 했다.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이니 그럭저럭 올라갈 만했다.
무사히 너덜지대를 지나고 본격적인 운행이 시작되었다. 분명 전체 중 아이스 구간이 70%라고 봤는데 계속 걸어도 도통 얼음은 나오지 않고 계속 너덜지대다. 첫 언덕을 온 힘을 다해 오른 탓일까 계속 뒤쳐졌다. 쉬지 않고 가고 있는데 선두그룹은 왜 이렇게 빠른 것일까? 도통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힘이 푹푹 빠진다.
모든 등반을 마친 후 베이스캠프에 장비를 정리해 뒀다.
지옥 같은 너덜에서 오른발, 왼발을 반복하니 드디어 아이스 구간이 나왔다. 가이드는 크램폰 없이 올라갈 수 있다고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모두 크램폰을 체결했다. 두 번의 어센딩 후 대장님께서 구간이 완만하다고 판단해 장비를 모두 회수하고 다시 걸어서 운행했다. 크램폰을 뺄 수 없어서 그냥 신고 올라가니 금속부위가 다 갈렸다. 저 멀리 한국에서 크램폰 아까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덜을 오르니 정말 설산 같은 곳이 나왔다. 대장님이 그곳에서 배낭을 놔두고 가자고 해서 행동식과 에너지 음료만 하나 마시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올라갔다. 고정 로프가 깔려 있었는데 눈에 파묻혀서 한 발 가고 로프를 뜯어 올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이어 크레바스가 곳곳에 있어 이 구간은 또 어떻게 갈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대장님이 먼저 발을 깊게 밟고 올라가면 우리는 계단처럼 그곳을 밟고 올라가는 식으로 운행하기로 했다. 대장님과 종윤이, 청경이가 차례대로 정상 직전까지 올라갔다.
그때 모두 정상에 같이 올라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는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정윤 형을 기다렸다. 밑에서 힘겹게 바일 한 번 발 한 번을 반복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정윤 형은 이번 탐사에 오기 전 아콩카과에서 정상공격을 하다 중간에 하산을 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그의 사투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듣기로는 검은 선글라스로 감췄지만 울면서 올라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윤 형까지 올라오고 나서 우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어 간다."
대장님의 말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여 낯설던 얼굴이 어느새 동료의 얼굴로 바뀌었다.
복학 후 졸업과 취업이 가까워질수록 길은 막막해졌다. 결국 휴학을 선택하며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 오지탐사대에 지원했다. 무사히 탐사를 마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고민과 불안이 참 무색하다.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할 뿐.
탐사대에서 웃고 울며 함께했던 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굳이 서둘러 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지 탐사에서의 경험은 마음속에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로 바꿔 주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기자 admin@gamemong.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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